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빨간머리 앤 그린게이블로 가는 길 - 하늘에서 툭 떨어진 내 딸

효준선생 2013. 1. 5. 07:30

 

 

 

 

 

  한 줄 소감 :  몇 장면에선 어릴 적 본 기억이 났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추억을 선사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캐나다의 어느 시골을 배경으로 고아 소녀 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모가 없다는 사실보다 가족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더 마음의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빨간 머리의 11세 소녀. 빨간 머리는 그녀에게 일종의 징크스지만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선물이라며 체념하는 모습이 앙증맞다. 고아원 출신이라 어둡거나 우울해하거나 할 거라는 선입견은 그녀에겐 없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도 부침성이 좋으며 늘 하이톤의 그녀의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과묵한 사람들에겐 상큼한 유자차의 첫 모금의 맛이 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호감을 보이지는 않는다. 고아를 데려다 일만 부려 먹을 것 같았던 이웃의 블루엣 부인에겐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그건 그녀만의 생존 본능에 가까워 보인다. 누가 자기에게 잘해주고 누가 자기에게 모질게 굴 거라는 걸.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머물고 싶어 하는 초록 지붕의 매튜 할아버지네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 줄까? 왜 소녀는 처음부터 그 집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을까? 소녀 이상으로 수줍음 많은 매튜 할아버지,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지만 마릴라 할머니, 남매지간이라 좀 달라도 같은 구석이 있는 건 아닐까? 


영화 빨간머리 앤 그린 게이블로 가는 길의 기본 정서는 정(情)이다. 고아원에서 남자 아이를 입양해 매튜 할아버지의 일손을 도울까 했건만 중간에 착오가 생겨 주근깨 투성이 앤이 이 집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차역, 마차 위에서 만끽한 플라타너스 길,  할아버지네 집에 오는 길에 만난 호수, 별거 없는 풍경이지만 소녀에겐 모두가 자유로운 환희였다. 그럴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소녀는 마릴라 할머니의 쌀쌀맞은 태도에 늘 이런 식의 말을 한다. "고아원에서는 그렇게 할 시간이 없었어요.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죠." 자기 만의 것, 자기 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소녀에게 소박하지만 혼자 쓸 수 있는 방과 어쩌면 가족이 될 수도 있을 법한 상황에서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인지상정이다. 낯선 시골마을이지만 소녀가 이곳에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해 보였다.


이 만화영화는 일본의 옥시덴탈리즘의 체현이라고 보인다. 서양 작가의 잘 알려진 원작들이 일본 감독들에 의해 만화화가 되고 그것들이 자국과 한국 등에 소개되며 은연중에 서양 동화를 접해 본 중년 세대들에겐 이 영화가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흔하디 흔한 3D 입체영화는커녕 도화지에 수채화 물감을 번지듯 그려낸 원화에 익숙하지 못한 요즘 젊은 세대와 아이들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이야기 흐름 자체가 곡절많은 사연을 다루기 보다 앤이 그린 게이블에 정착하는 과정까지만 주로 심리적인 부분을 다룬터라 역동성은 떨어진다. 그러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날로그 감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인지라, 좀 느린 것이 오히려 끌렸다.


매튜 할아버지네의 동물 농장을 보면서 저런 곳에서 산다면 잔병치레 같은 건 안하고 살 것 같았다. 그림을 보면서 힐링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앤이 우여곡절 끝에 초록 지붕 집에 머물 수 있다면 이야기는 계속 되지 않을까? 그 후일담도 궁금하다. 

 

 

 

 

   장르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  얼리버드 픽쳐스

   배급  미디어데이

   홍보  호호호비치/디앤디미디어파트너스

 

 

 

 

 

 

 

 

 

 

 

 

 

 

 

 


빨간머리 앤 : 그린게이블로 가는 길 (2013)

9.6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출연
야마다 에이코, 키타하라 후미에, 사이카치 류지, 하자마 미치오
정보
애니메이션, 가족, 드라마 | 일본 | 100 분 | 2013-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