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박수건달 - 이 남자의 운명, 거스를 수 없다

효준선생 2012. 12. 27. 07:30

 

 

 

 

 

   한 줄 소감 : 가득찬 에피소드를 조금 덜어내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을텐데...

 

 

 

 

어른들이 손금을 봐준다고 할 때 마다 주먹을 쥐던 때가 있었다. 어린 꼬마도 아닌데 뭘 그런걸 믿냐며 덮어놓고 난 그런거 안 믿어라며 손을 등뒤로 빼곤 했지만 내심 나의 운명선이 나쁘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손금이 뭐라고 여든 넘게 장수하신 할머니의 손금은 생명선이 손목께 까지 뻗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였다. 우울했다. 난 오래 못사나 보다라고. 그래서 동전 같은 걸로 일부러 손금을 도드라지게 만들기도 했으니 그런다고 운명이 바뀌고 그런다면 점쟁이들은 다 굶어 죽을 판이다.


운명을 믿냐고 물을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가 그렇게 살고 싶어하면 그게 운명이지. 이번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도 처음 정치권에 등장했을 때 운명이라는 두 글자를 천명하고 나섰는데, 도대체 한 사람에게 운명이란 이미 정해진 걸까 아니면 아니면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걸까? 그거라도 알면 난 뭐라도 해볼텐데...이것도 핑계거리라고 하고 있다.


영화 박수건달의 주인공 광호가 딱 그 상태다. 조직의 2인자로 회장님의 총애를 입어 승승장구 하던 그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넘버 3의 농간에 우발적으로 운명이 바뀌는 사태가 발생하고 그 두 번째 운명이란 게 박수무당이라니, 건달이 박수무당된 사연은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구한 셈이다. 신(神) 내림은 스스로가 개척한 운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인식도 그렇고, 남의 운명을 가이드해준다는 건 그만큼의 정신적 압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조직원들을 따돌리고 수시로 점집에 와서 카운슬러를 해주던 그에게 드디어 신묘한 능력이 추가되었다. 이른바 영매(靈媒)다. 귀신을 볼 수 있고 살아있는 사람과 다리를 놓아준다. 영화에서 조폭 출신의 박수무당 광호가 영매가 되어 산 자와 죽은 자의 오작교 역할을 한 경우가 두 번 등장한다. 사연없는 죽음이 없듯, 젊은 여자 귀신과 어린 여자아이 귀신은 광호에게 매달려 마지막 인사를 대신해달라고 한다. 한번도 해 본적 없는 영매의 역할을 그는 해낼 수 있을까


영화는 기본적으로는 깡패 영화다. 치고 받고 싸우고 조직 내의 알력 때문에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하지만 광호가 속해 있는 조직을 정통파 깡패 무리라고 하기엔 너무 코믹하다. 무슨 업종에서 수입을 창출하는지는 모르지만 어민들의 풍어제를 주관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걸 보니 부동산 개발에 관여하는 모양이다. 오히려 어리버리하기까지 한 조직들 보다는 박수무당이 된 광호가 귀신들과 어울려 한풀이를 도와주러 다니는 장면에서 울컥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에피소드가 되는 이야기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건달에서 무당으로 전환되면서 보여주려는 두 가지 캐릭터의 혼재가 반복되면서 후반부 들어 이야기 진행 속도가 다소 완만해지지만 부분적인 웃음코드는 코미디 영화답게 풍성한 편이다.


조폭 마누라 시리즈로 재미를 본 연출자의 내공과 헬로우 고스트, 사랑과 영혼, 점쟁이들, 청담보살등에서의 냄새가 고루 섞인 듯하며 무수한 조폭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시퀀스도 양념으로 추가된다. 주인공 광호 역할을 맡은 박신양의 몸개그가 생각보다 많고 노란 옷을 입고 나오는 꼬마 연기자와 함께 있을 때의 모습이 영락없는 딸 바보로 보였다.


씻김굿을 해서라도 그 남자의 운명이 바뀌길 바라는 데, 건달도 아니고 박수무당도 아닌 한 여자의 평범한 남자로 남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아니면 세상을 구원하는 정도의 더 큰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게 욕심일까? 물론 극 중 광호의 이야기다.    

 

 

 

 

 

 

 

 

 


박수건달 (2013)

8.3
감독
조진규
출연
박신양, 김정태, 엄지원, 정혜영
정보
코미디 | 한국 | 128 분 | 2013-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