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레미제라블 - 시대의 아픔이 오버랩되기에...

효준선생 2012. 12. 26. 00:21

 

 

 

 

 

 

 

 

    한 줄 소감 : 이 영화, 씹을 수록 진한 맛이 우러난다.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이 연말 극장가에서 순항 중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극중 내용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180년 전의 머나먼 이국 땅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오늘 한반도 안에서의 정황과 별로 다르지 않음에 놀라웠다.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훔쳤다는 이유로 무려 19년이나 장기 복역을 해야 했던 장발장, 양형기준이 제 멋대로 인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기득권자들의 범죄는 그럴 수도 있다며 파렴치 범에게도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민생 범죄 사범들에겐 가차없는 징벌, 흔한 일이다. 영화 초반 부 장발장을 비롯한 죄수들의 노역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에 괘씸죄로 보이는 하나를 더 추가한다. 장정 서넛이 들어도 힘들 것 같은 깃대를 장발장 혼자서 끌고 오라는 간수. 그 장면때문에 나중에 자베르 형사에게 빌미를 잡히지만, 빵 한조각의 댓가치고는 혹독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루이 14세와 마리 앙뜨와네트로 회자되는 사치의 궁극. 프랑스 군중들은 그들의 죽음에 환호했지만 그렇다고 민중의 시대가 열린 것은 아니었다. 장발장은 그 즈음 감옥으로 갔다가 가석방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프랑스는 다시 왕정복고가 일어났다. 귀족과 부르조아를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들의 득세, 그럼 장발장은 어떤 인물을 대변하고 있는 걸까?


장발장은 가석방 상태에서 재차 성당의 물건을 훔치고 자신의 과오를 질책하기는커녕 감싸 안아주는 주교의 태도에 감읍받은 바, 앞으로서의 삶은 타인을 위해서라는 자신과의 각오를 되새긴다. 矯正은 감옥에서가 아닌 한 인물에 의해서였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마들렌 시장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패자도 부활이 가능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건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소인 작은 공장은 장발장의 만든 또 하나의 사회적 기업의 모습이다.


비련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판틴은 이곳의 노동자였다. 그런데 그녀는 다른 노동자와 십장에 의해 해고된다. 이른바 비정규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그곳에서 마음 편히 일을 했다면 적은 급여일지라도 결코 거리의 여자로 전락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회 안전망의 미비는 결국 근로의 의욕마저 앗아가고 만 셈이다. 머리카락을 팔고도 모자라 정조마저 하룻밤 거래로 유린당한 채 객사하는 그녀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은  슬픈 시대의 자화상이자 보호 받지 못하는 하층민의 상징이었다.


이 영화에선 또 하나의 중요한 캐릭터가 나온다. 판틴의 딸인 코제트를 데리고 있는 여관주인 부부들이다. 자신들도 보잘것 없는 처지임에도 더 가난한 자들을 옭죄며 잘 사는 사람들에겐 굽신거리는 이중성. 그들 역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항변하겠지만 코제트를 데리러 온 장발장에게 마치 때를 놓칠 수 없다며 상당한 금액을 요구하는 모습이 세태에 찌든 천박함의 상징이다. 이들은 코제트의 결혼식 때 재차 등장해 모리를 취하려 하는 모습에서 삶은 참으로 끈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늘고 길게 살 수 있는 노하우를 잘 알고 있는 처세의 달인처럼.


판틴이 남긴 딸 코제트와 그녀의 피앙세는 새 세대를 대신한다. 특히 마리우스와 그의 친구들은 왕정으로의 복고에 극력 반대하며 소위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목숨마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보여준 바리케이트 사건은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일종의 저항정신으로 통용되었다. 영화 엔딩은 바로 이들의 처절하면서도 웅위로운 멜로디로 마감한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두 세대에 걸친 비운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대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몫에 대해 비극적이면서도 희망을 잃을 수는 없다는 한가닥 은근과 끈기가 읽힌다. 거기에 두 세대를 단단하게 이어주는 장발장의 넉넉한 뒷받침으로 인해 믿음이 강해졌다. 비록 공권력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장발장을 뒤쫒는 자베르로 인해 드라마의 긴장감은 높아졌지만 결코 이 불쌍한 사람들의 결기는 꺾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꺼워졌다면, 단순히 180년 전 프랑스에서 살던 사람들이 불쌍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과 오버랩되면서 뭔가 묵직한 울림이 전해져서가 아니었나 묻고 싶다. 

 

 

 

 

 

 

 


레미제라블 (2012)

Les Miserables 
8.4
감독
톰 후퍼
출연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정보
드라마, 뮤지컬 | 영국 | 158 분 | 201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