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롤플레이 - 신묘한 작가의 덫에 걸리다

효준선생 2012. 12. 7. 01:30

 

 

 

 

 

   한 줄 소감 : 정확하게 재단된 베드신과 엔딩을 기상천외하게 매조지하는 한 방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話者는 확실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오프닝 크리딧이 끝나고 본 편이 시작하면서 등장하는 나레이션의 주인공을 영화를 끌고 나가는 화자라고 정의한다면 그의 역할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는 역시 보는 맛 때문에 그런지 들리는 맛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 영화 롤플레이의 시작은 별장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한 남자의 독백으로부터 시작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고 주변에 인적조차 드문, 시골 별장으로 이사 온 그는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며 소설을 쓴다고 했다.


작가를 주요인물로 다룬 몇 편의 영화들, <유령작가>,<베스트셀러>,<살인소설>등 작가들의 유형을 보면 대개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해 일종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첫 번째 히트작 이후 알아주는 작품을 쓰지 못해 전정긍긍하는 소포모어 신드롬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개중에는 귀신을 접하거나 푸티지 파운드 장르처럼 현실과 리얼 사이의 늪 속에 빠져들곤 한다.


이 영화 속 주인공 남자, 하루종일 거의 집에서만 맴돈다. 침대에서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거나 혹은 글을 쓴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여자, 아내다. 현혜한 듯 보이는 아내는 남편에게 큰 불만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둘 사이가 다소 밋밋해 보인다. 아마 남자는 아내에게서는 작품의 영감을 얻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가 쓰는 소설의 장르로 볼 때 사랑을 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 같은데, 남자는 대체제를 강구한다.


아내가 강의하는 대학에 바람이라도 쐴까 하고 나간 자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여학생. 20여 년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자기 집에 얹혀살던 사촌 누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그녀에게 모종의 제안을 한다. 물론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초, 중반까지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의 일탈을 그린 성애물쯤으로만 생각했다. 묘한 분위기의 남녀관계, 세 차례 등장하는 과감한 정사 씬, 거기에 관계를 들킬 듯 말 듯 애를 태우는 스릴까지, 그런데 영화 엔딩에 가까워 오자 플래시 백이 연속 터졌다. 영화 속 영화가 아닌 소설 속 영화, 이 영화의 주요한 뼈대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상력이었다.


엔딩에 가서야 남자는 작품 관련 인터뷰를 하는데, 그제서야 이 영화 도입부 화자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엔딩 부분의 급박하게 몰아붙인 트릭 몇 개가 모두 작가인 남자의 머릿속 이야기라는 사실에 경악을 했다.


이토록 완벽하게 기만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에로틱” 이라는 광고문구에 현혹이 되어서였을 것이다. 많지 않은 등장인물, 시덥지 않은 심리묘사, 어설픈 연기가 뒤죽박죽 되어 있는 영화들, 이런 걸 “주인공이 벗는다”라는 꼬임에 넘어갔다가 혀를 끌끌 차고 나오길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이 영화는 에로틱이 아니라 스릴러에 방점을 찍어야 했다. 세차게 몰아붙인 후반부와 남자의 정체를 다 알고 난 직후엔 그제서야 형광등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


길지 않은 러닝타임과 적절하게 안배한 이야기 구조, 아슬아슬한 세 남녀간의 밀당, 무엇보다 깔끔하게 손질된 베드신들이 이 영화를 즐겁게 보기 위해 미리 알아두어야 할 학습부분으로 소개한다.  

 

 

 

 

 

 

 

 


롤플레이 (2012)

8
감독
백상열
출연
이동규, 김진선, 한하유
정보
스릴러 | 한국 | 76 분 | 201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