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26년 - 상처는 여태 아물지 않았다

효준선생 2012. 11. 30. 08:00

 

 

 

 

 

 

   한 줄 소감 : 볼 때는 손바닥에 한 가득 땀이, 보고 난 뒤엔 뒷 목이 땡겼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다. 마지막 한발의 총성이 울리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수가 손에 땀을 쥐고 기다렸던 그녀의 한 발이 아님을 직감했다. 아직도 적지 않는 사람들이 그에게 각하라 부르고 몸을 날려 보호막이 되려는 모습에서 더 나은 정의란 아직 이 나라에선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오프닝 크리딧이 끝나고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다. 이어 여느 오락영화라도 기대했던 몇몇 관객들의 팝콘 뜯어 먹는 소리가 딱 멈췄다. 비록 거친 톤의 애니메이션이었지만 1980년 5월 중순, 남도의 평화로웠던 도시 한가운데서 벌어진 살육의 현장이 그들을 얼려버렸다. 숨도 제대로 못 쉰 채 10여분을 보내고 실사가 등장하자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이야기의 충격이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남겨졌을 뿐 조금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은 채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1980년 봄은 따뜻했다. 군부 쿠데타와 유신이라는 허명으로 장장 18년을 대통령 자리에 있던 그 사람이 부하의 총탄에 죽자 세상은 곧바로 민주주의가 도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 불로소득에 대한 차압이었다. 이름하여 신군부, 그들의 압제는 그들의 선배가 19년 전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옥죄었다. 그리고 음식 잘 만들기로 팔도에서도 으뜸가는 남도에서 결국 터졌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 남겨진 트라우마도 적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걸 폭도들에 의한 폭동이라고 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영화 26년의 주인공들은 그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 나섰다.


영화 26년, 웹툰 작가 강풀의 연이은 영화화 작품 중의 하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만화이기에 대충 즐기며 볼 만한 곳은 없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다소 누르기 위해 희화화한 캐릭터도 있지만 그들이 보여줄 후반부의 사명으로 인해 마음껏 웃을 수는 없었다. 그저 무사 안녕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60여년의 역사 속에서 그 누구하나 국민을 편안하게 해준 경우가 희소했다. 자기들은 이런 저런 명분을 내세우며 노력했다고 항변하겠지만 받아들이는 국민들로서는 아니었다고 도리질 치기도 귀찮다. 제발 그냥 좀 놔두라고, 대통령이란 자리가 天賦도 아니면서 그리고 이미 물러난 자가 마치 옥황상제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가관이다. 영화에선 이 장면을 그 사람이 지나가면 모든 신호등이 녹색등으로 인위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치환했다. 그 사람은 장군 출신이면서 현재는 이등병이고, 국가에 내야할 징벌적 과징금이 수천억이다. 그런데도 하고픈 것 다하고 심지어 현역 군인들로부터 사열까지 받는 자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영화를 보면서 분노케 한 것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이 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노선에 끼어들어 방해를 하는 무리들이 미웠다. 아직도 비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그 사람을 데려다 놓고 강연회를 들으러 온 무리들이 그에게 큰 절을 올리는 장면은 경악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면 이 영화는 탄생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26년 전 그 지옥도 같았던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채 괴로움에 시달렸던 사람과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같은 민족의 가슴에다 총질을 해야했던 계엄군 출신. 단 한 사람을 향한 분노가 그토록 그들을 어렵게 만들 수 밖에 없는 현실의 구조가 개탄스럽다.


그 사람은 지껄였다. 자기에게 당해보지 않았던 젊은이들이 자기에게 반감을 갖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권좌에 있던 시절, 그렇게 많은 학생들을 잡아다 치도곤을 날린 수괴가 이제 그들이 중년이 되어 자신을 계승한 정치세력들에게 여전히 한 표를 행사하는 걸 보고 자만했을까? 분노의 총구는 불을 뿜었지만 그 끝이 그의 심장이 아니었던 건,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하지 못한 역사를 덧칠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점점 짙은 색을 칠해야 원래의 색을 가릴 수 있을 뿐이다. 언젠가 검은 색으로 변했을 때 우린 과연 원래의 색이 무엇이었는지 구분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작은 관심이나 있을까? 벌써 26년, 아니 32년이나 지났으니 옛일이라며 외면하는 당신에게. 

 

 

 

 

 

 

 

 

 

 


26년 (2012)

7
감독
조근현
출연
진구, 한혜진, 임슬옹, 배수빈, 이경영
정보
드라마 | 한국 | 135 분 | 201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