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 영화와 인생은 참 닮은 듯 하다

효준선생 2012. 11. 23. 00:39

 

 

 

 

 

 

  한 줄 소감 : 영화를 보고 나면 얼마나 말초적인 것에 길들여져 있었나 성찰하게 된다.

 

 

 

 

 

영화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영화의 줄거리보다 연출의 형식이 주는 모호한 충격이 인상적이다. 노장 감독 알랭 레네가 이 영화를 자신에게 바치는 헌정작품처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무려 13명의 배우들이 극작가 앙트완 당탁의 부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통해, 그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어느 저택으로 모여 달라는 당부를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저택에 도착해 집사의 안내를 받는 13명의 배우들, 영화는 이 두 장면에서 반복적인 시퀀스를 삽입한다. 전화 내용과 배우들이 저택으로 들어서며 옷깃을 추스르는 장면이다. 어렵사리 모은 배우들은 한결같이 오랜 세월 영화판에서 인생을 보인 말 그대로 베테랑들이다. 그들은 널찍한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 집사가 준비한 영상으로 보며 작고한 지인을 보낼 마음으로 스크린을 응시한다.


중요하다고 언급한 이 영화의 형식은 이 영화 속 영상, 앙뜨완 당탁이 연극 오르페우스의 리허설 장면을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 연기하는 9명의 배우들은 대부분 신예 배우들이다. 말없이 응시만 하던 스크린 밖의 노 배우들은 영상 속 대사를 하나 둘씩 따라 하기 시작하며 연극의 전개는 스크린 밖 배우들에게 전이된다. 다시 말해 스크린 안의 배우들의 대사와 동작은 인위적으로 비추지 않고 스크린 밖의 배우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는데, 13명의 배우 누구 하나도 어색해하지 않고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연기를 한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13명의 배우들은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알랭 레네 사단의 멤버들이었기 가능했던 것이다. 올해 연세가 아흔인 알랭 르네의 연출 경력을 감안하면 배우들의 연령도 40대 이상들이다. 가장 어린 마티유 아말릭이 65년 생이니 이들의 연륜으로 보면 익숙한 극의 대사 정도는 눈을 감고도 외울 수 있을 터이니, 마치 더빙처럼 시작했던 이들 배우들은 과감한 액션까지 가미해 영화속 연극이 추가된 셈이다.


이쯤되면 이 영화는 영화와 영화속 연극과의 경계가 무너진 셈이다. 그리스 희극 오르페우스의 줄거리는 사랑에 대한 회한이 주제지만 그 이야기보다 그동안 연기 생활을 하며 서로의 파트너가 되기도 했던 배우들이 마치 오랫동안 연습을 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런 연기를 해내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배역을 둘 이상 해왔던 일종의 더블 캐스팅의 경우 두 명의 배우들이 같은 대사를 읊조리거나 한 명의 배우를 놓고 둘이 연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위해 화면 분할은 예사고 심지어 네 개의 화면으로 나누어 폐쇄회로를 보는 듯한 효과도 집어 넣었다.


연극의 배경이 되는 역과 허름한 여관은 바로 앙트완의 그 저택의 응접실 바로 옆에 있으며, 문을 열고 나가면 거리가 되고 기차역이 되었다. 당연히 창문 밖으로는 쉴 새 없이 기차가 지나가는 효과도 가미했다. 연극은 모두 4막과 종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막이 끝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실에 모인 배우들은 아주 편한 자세로 다시 스크린을 들여다볼 준비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영화 속 연극과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끝이 나도 또 하나의 시퀀스가 기다리고 있다. 앙뜨완의 부고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앙뜨완은 죽지 않고 그들을 반긴다. 그의 목적인 그렇게 해야 다들 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더 아이러니한 장면은 엔딩에서 다시 한번 전복한다. 앙뜨완이 왜 그런 비극적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이 영화의 의도는 짐작은 간다. 평생 자신의 작품에서 함께 땀을 흘려진 배우들, 주연뿐 아니라 잠시 모습을 보이는 단역배우들도 등장한다. 알랭 레네 감독은 이들과 함께 하고픈 시간들을 되새겨 보고, 그렇게 오랜 세월 연출가로 살았음에도 다하지 못한 영화인으로서의 아쉬움을 담아내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영화 속 극작가인 앙트완을 자신과 매치시킨 것으로 보인다. 삶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무한하다. 감독과 베테랑 배우들이 남겨놓은 열정과 결과물들은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다.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2012)

You Haven't Seen Anything Yet 
7
감독
알랭 레네
출연
사빈느 아제마, 마티유 아말릭, 안느 콩시니, 랑베르 윌슨, 삐에르 아르디티
정보
드라마 | 프랑스 | 115 분 | 20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