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심플라이프 - 웰다잉을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효준선생 2012. 11. 16. 07:30

 

 

 

 

 

  한 줄 소감 : 고독사가 빈번한 요즘 세상에 이들은 행복한 삶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중국(홍콩)영화가 저평가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극장가엔 방화, 외화, 그리고 홍콩영화가 정립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눈으로 보면 다소 질적으로 처지는 것도 네 글자 사자성어 같은 제목을 단 홍콩영화들이 일주일이 멀다하고 극장에 간판이 올라갔고 흥행도 되었다. 홍콩스타는 말 그대로 한국에서도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했고, 주윤발, 왕조현은 한국 광고에도 등장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즈음 홍콩은 문화적 쇠퇴기를 겪었다. 인기스타들은 자신이 태어난 홍콩을 떠나 캐나다와 미국, 호주등으로 이민을 선택했고 이들이 좌우했던 홍콩 영화계엔 공동화 현상이 벌어졌다. 당연히 한국 극장에 걸리는 영화도 감소되었고 질적으로도 외면받았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났다. 여전히 중국(홍콩) 영화는 부흥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흥행성적도 시원찮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반응과 달리 현지에선 상당히 우수한 영화들이 세상에 나왔다. 그들 영화를 한국에서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영화 심플라이프는 바로 이 홍콩의 민낯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영화는 홍콩의 유명 영화 제작자 로저 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실명 영화인들이 다수 등장했다. 과거회상이 주로 나오기에 올드한 추억거리가 많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서극 감독과 홍금보가 로저 리를 연기한 유덕화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어디서 또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영화 주인공은 유덕화가 아니라 하녀 쫑춘타오라는 할머니였다. 기구한 인생역정을 마무리하는 시기를 조명한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는 것과 죽는 것이 결국 하나로 되어 있으며, 세상에 왔다 조용히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가난한 집 여식으로 태어나 양부모에게 맡겨지고 양부모 마저 죽자 유덕화의 할아버지네 집 하녀로 들어간 아타오, 평생을 그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아이들이 자라 아버지가 될 때까지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삶은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아 보였다. 영화 시작지점, 로저(유덕화 분)와 둘만 사는 아타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혹시 흔한 소재인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로 둘의 관계가 의심스러웠지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임에도 자기 집 하녀 할머니에게 쏟는 정성이 남달랐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일정한 경계의 선은 유지하는 듯한 설정들.


죽음을 논하지만 울고 짜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요양원에 있는 여러 캐릭터들의 노인들이 오늘날 홍콩의 노인 문제를 조명하고 부모 세대와 자식세대의 괴리, 이민가족의 명암도 곁들여 놓았다.


어느날 중풍에 걸려 로저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나와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아타오, 원래 그녀의 이름 자체가 하녀를 연상한다. 한국의 언년이나 유월이처럼, 그런 이유로 본명인 춘타오(봄 복숭아라는 뜻)대신 아타오로 불리는 그녀. 나름 결벽증이 있어 처음엔 요양원의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환자, 노인과 공감을 나누며 조금씩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중풍에 다시 엄습하며 그녀는 자신의 명운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런 그녀를 앞두고 로저는 마지막까지 함께 하려고 한다. 


로저 리가 영화 제작자 인 만큼 한물 간 홍콩 배우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많이 변해버려 간파하기 쉽지 않지만 그들 역시 홍콩 영화 전성기를 꼼꼼하게 채워놓는데 일조한 바 있는 역군들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세상이 무상함을, 그리고 그들의 인생의 만조기를 나 역시 겪어야 할지 모르는 실제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거장의 반열에 넣어도 충분한 여류 감독 허안화의 정감넘치고 디테일이 꼼꼼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홍콩의 먹거리가 여러차례 등장해 지루할 틈을 톡톡 튀겨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인간미 넘치는 좋은 홍콩 영화의 도래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심플 라이프 (2012)

A Simple Life 
9.2
감독
허안화
출연
유덕화, 엽덕한, 왕복려, 진해로, 황추생
정보
드라마 | 홍콩 | 118 분 | 20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