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비지터 - 무료한 삶을 헤집어 놓고 간 바람처럼

효준선생 2012. 11. 12. 00:08

 

 

 

 

 

 

  한 줄 소감 : 나를 찾아온 손님들은 다시 제 갈길을 가고 난 또 혼자 남았다. 인생은...

 

 

 

 

지난 10여 년간 단 한번도 강의 커리큘럼을 바꿔 본 적도 없고, 강의에 대한 열정보다 자신의 이름을 단 책을 쓰는 데 몰두하는 초로의 대학교수, 융통성이라고는 거의 없는 그의 빈한한 삶에 낯선 이들이 노크를 한다. 어디서 온 건지, 자기와 무슨 전생에 인연이 있길래 그렇게 모질게 자신을 휘둘러 놓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가여운 듯해 옆에 있어주고 경제적인 도움을 나눌 뿐이다.


영화 비지터의 교수는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다소 완고해 보이는 스타일의 亡妻한 초로의 신사다. 대학에서 마련한 숙소에 머물다 시간이 좀 남으면 뉴욕의 아파트로 와 쉬었다가는 일상의 반복이다. 자식은 런던에 살고 아내가 없는 집은 썰렁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날 시리아 청년과 세네갈 출신의 여자가 자신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살고 있기에 깜짝 놀란다.


이 세 사람의 인연이 분명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 공간에서 만날 수는 없다. 자신의 집을 점거했던 이방인에게 오히려 방을 내주고, 남자가 들고 다니는 아프리카 타악기 젬베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수를 보며 저 사람 외로운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많을 때야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하지만 그 반대가 되면 자꾸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한참 뒤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 남자의 엄마와의 미묘한 남녀관계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악기 젬베는 두드림으로 사람들의 흥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구석이 있다. 거리에서 여럿이 함께 젬베를 두드리는 데 그걸 보고 공원에 운집한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은 누가 시켜서 된 것이 아니다.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타악기 선율에 사람들의 경계심은 무장해제 된다. 그들의 고향이나 피부색에 대해 그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다. 대신 문제는 공연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아랍 출신들은 의심을 받는 사회, 그곳은 바로 미국이다. 온갖 인종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911이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미국인들에게 중동국가 남자들은 얼핏보면 테러범이다.


남자에게 손을 내밀어주려는 교수 역시 그 마음은 완전한 동정심에서 출발하지는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진정성이 전해지면서 그들간엔 서로 함께 하고 싶다는 동질감이 생긴 셈이다. 이 부분은 세네갈에서 온 여자도 마찬가지다. 백인 남성에 대한 불편한 시선, 경계심은 한동안 오래된다. 아마도 그건 자기 자신도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상의 불안함 때문에 오는 심리적 경계였을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의 주류계층이라 할 수 있는 보수적 성향의 백인 노교수에게 찾아온 불법이라는 딱지를 단 외국 남녀, 그것도 피부색이 완연히 다른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접점을 찾아보려는 의도를 가진 듯 싶었다. 영화 초반에 교수가 학회에 나가야 하는 사유를 논문 공저자때문이라고 반복하는 것도 역시 “함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의도같았다.

 

 

 

 

 

 

이들은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 언제 다시 또 재회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위대한 아메리카 합중국의 일원으로 몰래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며, 정말 삶이 고달파 떠나온 고향의 그것처럼, 미국도 별로 다르지 않음을 역설한다. 수형자 인권에 대해 비틀거나 지하철 개찰구를 넘어갔다며 시작된 검문검색의 위압감은 상당해 보였다.


제목으로 나온 비지터는 비단 교수를 찾아온 손님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미국을 찾아온 외국인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범위를 넓혀서 만약 한국인이라면, 그들은 뭔가 좀 다른 처우를 해주었을까?  

 

 

 

 

 


비지터 (2012)

The Visitor 
8.4
감독
토마스 맥카시
출연
리차드 젠킨스, 히암 압바스, 아미르 아리슨, 하즈 슬레이만, 다나이 구리라
정보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04 분 | 20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