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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 스카이폴 - 아날로그 액션이 정감어린 이별 드라마

효준선생 2012. 10. 27. 01:18

 

 

 

 

 

 

 

    한 줄 소감 : 본드걸의 역할은 따로 있었네.

 

 

 

 

 

영화 007 스카이폴을 관통하는 한 단어를 꼽으라면 年輪이다. 나이가 들면 나무의 나이테가 동심원을 그리며 두꺼워 지듯, 사람에겐 주름살이라는 외모적 변화 말고도 눈치라는 게 는다. 시인 이형기는 작품 <낙화>에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 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추한 모습도 보이고 혹은 몽니도 부린다. 하지만 長江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올리기에 도도한 長江은 끊임없이 흐를 수 있듯 누구든지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는 때가 온다.

 

 

 

 

 

 

 

007 시리즈가 등장한 지 50주년이 되었고 여러 차례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도 새로운 얼굴로 교체되어 왔다. 이번엔 다니엘 크레이거가 주요한 임무를 맡았는데, 이번 시리즈는 종래의 새로운 적을 맞아 물리치는 해프닝이 아닌 내부 정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영국의 정보부인 MI6는 다양한 영화에서 소개된 바 있어 CIA나 FBI, 구 소련의 KGB이상의 인지도를 갖고 있다. 물론 이 안에도 여러 가지 수하조직이 있겠지만 제임스 본드가 활약하는 부서의 국장인 M이 바로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디 덴치가 맡은 M은 그동안 제임스 본드에게 임무를 하달하는 짧은 역할로 등장해 왔지만 이번 영화에선 마치 007 시리즈의 프리퀄, 다시말해 007의 최초 등장을 소개하고 한 타임 쉬어가려는 시도처럼 보여졌다. 제목으로 나온 스카이폴은 영국 어느 시골 한적한 평원에 외떨어진 별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단어 연상게임을 통해 사고를 당하고 다시 MI6로 돌아온 제임스 본드의 적응력을 알아보는 실험에서, 스카이폴이라는 단어에 제임스 본드는 차마 대답을 꺼내지 못한다) 천애의 고아였던 제임스 본드가 이곳에서 미래의 첩보원으로 길러졌다는 뉘앙스와 M의 떨떠름한 얼굴을 오버랩 되면서 왜 제임스에겐 그녀가 단순히 상사이상의 역할을 가지게 되었나 잘 알 수 있다. 숨겨진 캐릭터의 전면 등장엔 그만한 이유가 숨어 있다.

 

 

 

 

 

 비밀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무엇보다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제 아무리가 자기 식구와 같은 부하직원이라고 해도 내쳐서 모두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건 내치는 사람의 마음이다. 내쳐진 사람의 마음에선 그것은 배신이나 진배없다. 그런 사람, 꼭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실바로 대변되는 캐릭터. 퀴어적 소양도 있어 뵈고, 물론 전직 첩보원 출신답게 솜씨도 출중하다. 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조직에게 도로 칼을 겨누는 그의 마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만약 실바를 오래전 집을 나가서 성격 삐뚤어진 채로 돌아온 형이라고 비유한다면, 거기에 맞서는 동생과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웅장하다 못해 비장미까지 느껴지는 가수 아델의 동명 타이틀 곡이 흐르는 오프닝 씬은 인상적이다. 터키 로케이션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액션 추격장면과 맞물려 강렬하게 시작하는 007 스카이폴, 동료의 죽음과 사라진 요원들의 리스트, 돈도 안되어 보이는 그걸, 누가 훔쳐가려고 했던 걸까? 이어서 상하이와 런던을 오고가며 진짜 악역과 맞닥뜨리는 제임스 본드, 목숨을 노리는 건 그가 아닌 어느 노인이라고 하니, 눈치 빠른 사람은 금새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못마땅한 상사가 있을 수 있다. 계급장 떼고 한판 붙고 싶다는 생각도 아니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젠 몸도 마음도 상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내 존재를 보여줄 수 있는 건, 힘의 논리뿐이다. 사실 이번 시리즈에서 힘빠진 노병은 아이러니 하게 제임스 본드 자신이었다. 총격사고로 오른쪽 어깨를 다친 뒤 제대로 총격도 하지 못하고, 철봉도 몇 개 하다가 주저앉고 만다. 영화에선 유난히 올드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007 시리즈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눈에 번쩍 뜨일 새로운 무기들과 컨셉카도 이번엔 많지 않았다. 총이 아닌 칼이 치명적 도구로 작용할 때 인물들은 “다 구식이다, 그래도 아직은 쓸 만하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이번 영화는 디지털 입체효과 그리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떡칠한 아방가르드한 영화와는 좀 다른 아날로그 냄새가 난다. 주, 조연 캐릭터들도 모두 전에 한번쯤 스치고 지나갔을 법한 과거의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왜 내가 물러나야 하냐며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나이들었다고 방구석만 지키고 있을 수 없음을 알게 해준다. 과연 그는 뒤돌아서 떠나야할 사람이 맞는 걸까?

 

 

이 영화를 통해 시리즈와 조직은 정리해고와 인력재배치는 끝이 난 모양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와 또 어떤 악역과 매치업을 시킬지는 곧 알게 될 것 같다. 아이맥스에 어울릴법한 광각의 장면들과 007하면 빼놓을 수 없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 장면에선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작 시리즈 물을 거의 챙겨보지 못했더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주요 캐릭터에게 포커스를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007 시리즈 입문자들에게도 무리가 없는 픽(pick)이 될 듯 싶다. 

 

 

 

 

 

 


007 스카이폴 (2012)

Skyfall 
6.8
감독
샘 멘데스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주디 덴치, 베레니스 말로히, 나오미 해리스
정보
액션 | 영국, 미국 | 143 분 | 201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