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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칭 포 슈가맨 - 인기는 그저 바람과 같은 것

효준선생 2012. 10. 10. 00:38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터진 건 한국이 아닌 세계무대였다. 해외공연을 나선 것도 아니고 그럴 듯한 마케팅을 전개한 것도 아니다. 신곡 발표하고 뮤직비디오 찍고 누구나 해볼만한 것들을 차근차근 한 것뿐인데 해외 언론에서 주목하는 뮤지션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가 초년생 풋내기 가수도 아니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이른바 한류 바람을 탄 비주얼 가수도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그의 이번 음악은 분명 끌리는 점이 없지 않았기에 가능한 바람이다. 그의 노래를 평가하려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중견 가수의 노래가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고 그게 역으로 한국으로 들어왔는지 그 과정을 보면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이야기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다.


중국과의 외교정상화가 수립되기 전부터 연변 조선족 마을엔 중국 노래가 아닌 현철이나 주현미의 트로트가 최고 인기곡이었다. 그들이 그곳에 가서 콘서트를 했다는 소리는 들은 바 없다. 당시에 온라인 루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무역업을 하는 사람들, 관광을 하러 간 사람들, 어렵사리 잡히는 라디오주파수에서 흘러나오는 한국발 가요의 정서가 그들에게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남아프리카 공화국엔 아라파트 헤이트라는 인종차별정책으로 흑백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이었다.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그들을 독려했던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어떤 과정으로 미국의 무명 뮤지션 시스토 로드리게스의 음반이 남아공으로 흘러들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차별과 저항으로 점철되던 그의 노래는 남아공 사람들에겐 한마디로 힘이 되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로드리게스는 뮤지션으로, 그가 남긴 두 장의 앨범의 주인공으로 존재할 뿐 생사여부 조차 불투명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어쩌면 그는 권총자살이나 콘서트 현장에서 분신했다거나 혹은 투옥되었다는 이상한 소문의 주인공으로 인구에 회자될 뿐이었다.


영화 초반 남아공의 음반제작자, 평론가, 뮤지션들이 나와 자신이 아는 로드리게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드렁했다. 도대체 로드리게스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길래 사람들은 이미 40년이나 지난 어느 가수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단 말인가? 중간 중간 그의 앨범에 실린 음악이 소개되지만 들어도 낯설기만 했다. 그의 노래가 저항의 아이콘으로 존재했다는 사실과 남아공을 훑고 지나갔던 과거의 상흔만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1998년 어느날 이 영화의 중심 축이자 로드리게스의 열성팬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그렇게 인기많은 가수에게 지급된 돈은 어디로 갔을까에 대한 의문을 품고 미국으로 와서 추적을 하던 차에,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스토 로드리게스, 그는 남아공의 가수가 아니라 멕시코 이주민 출신으로 미국 원주민과 결혼해 평범하게, 아니 하류인생을 사는 남자였다. 오폐물을 수거하고 철거현장에서 막일을 하기를 마다않는, 말 그대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빠였다. 딸들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울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그해 남아공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남아공 현지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그들에게 엄청난 놀라움과 재차 희망을 선물했던 장면이다. 미국에선 밑바닥 인생이지만 남아공에선 영웅이라니, 凡夫라면 이런 현격한 신분 상승으로 현기증을 일으키거나 다른 생각을 하게 마련인데 이 남자, 개의치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고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남아공 사람들의 환호에 그저 추억으로 화답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거저 주어진 행운에 흥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로소득은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남은 건 거죽뿐이라는 걸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로드리게스는 賢者같다. 40년 전 자신의 노래를 통해 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면 14년 후 한국의 영화 팬들에겐 삶의 방식을 귀띔해 준다. 둘 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당신은 어떤 걸로 누군가에게 꿈이 되길 원하는가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은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서칭 포 슈가맨 (2012)

Searching for Sugar Man 
9.4
감독
말리크 벤디엘로울
출연
말리크 벤디엘로울, 로드리게즈
정보
다큐멘터리 | 스웨덴 | 86 분 | 201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