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간첩 - 목란이 피면 그들은 부산해진다.

효준선생 2012. 9. 21. 00:27

 

 

 

 

 

 

    한 줄 소감 : 간첩들도 세파에 시달리며 우리 곁에서 부비적 거리며 살고 있다니...

 

 

 

 

얼마 전 전직 군인출신이자 현직 집권여당의 나으리께서 과거사를 자꾸 들춰가며 한 여인네의 발목을 잡는 세작들이 만연해있다고 해서 입방아에 오른 바 있다. 뭐 그들 머릿속에서야 자기들이 하는 주장에 반대를 하고 나서면 앞 뒤 잴 것 없이 주홍글씨를 냅다 가져다 붙이는 게 일인거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아주 오랜만에 듣는 細作이라는 단어 때문에 마치 삼국 시대 신라의 세작질이 떠올랐다. 사극 대사 중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이 단어는 바로 간첩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 간첩이라는 단어처럼 듣기 거북한 말이 또 있을까 어린 시절 골목 곳곳에 붙여있는 간첩신고 전단지, 간첩을 신고하면 몇 천 만원, 간첩선을 신고하면 또 몇 천 만원, 당시엔 간첩을 신고해서 포상금을 타는 걸 로또라고 생각했고, 정부 발표만 들어보면 간첩들이 상당히 많이도 잡힌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시절이 시절이 아닌데도 영화 간첩은 대놓고 대남 고정간첩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영화 보기 전부터 세월 좋아졌네, 이런 소재의 영화도 나오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 내용이 매우 코믹적이다. 남파한 지 10년, 이곳 생활에 찌든 모습을 하고 있는 4인의 모습을 보면 저래서야 소기의 목적을 이루겠나 싶기도 하는데, 한 무술하는 솜씨는 여전히 녹록치 않아 보이긴 했다.


경제가 안 좋다. 부익부빈익빈이라고 다들 죽는다고 아수성이다. 그런데 간첩들도 그 부류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활동자금은커녕 입에 풀칠하기 위해 중국산 가짜 비아그라 거래로 모아온 돈을 부하직원에게 빼앗기고 하나 있는 여직원은 아무도 모르는 국정원 직원이다. 여자는 어떤가 혼자 부동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그녀에게 남은 것은 돈, 오로지 돈 욕심이다. 이제 골로 갈 날만 기다리는 할배와 어느새 농촌 총각이 다 되어 버린 젊은 청년도 오랜만에 목란이 피었다는 말에 긴장을 한다. 여기서 목란은 바로 윗 동네로부터의 지령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그냥 웃자고 만든 상업 오락 영화지만 허투루 넘길 수 없을 정도의 사실성을 가미했다. 팩션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들이 현실적이다. 탈북 고위관료 출신인 황장엽의 캐릭터가 나오고 대북 삐라 살포 현장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남북 분단의 아픈 상처를 영화는 코믹이라는 오락적 요소로 버무려 놓았지만 소위 간첩들이 보여주는 생활상은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도 않았다. 돈 십 만 원에 부동산 거래를 하러 온 아줌마의 팔을 꺽질 않나 가짜 약을 팔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돈을 더 울궈내려는 모습들이 간첩이라기 보다 세파에 찌들대로 찌든 소시민에 가까웠다. 나머지 두 명의 이미지도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대한민국 서민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두 4명 중 김과장(김명민 분)의 에피소드가 대부분인데다 사건 진행이 밋밋하고 에피소드들의 지나친 반복 때문에 생각만큼 큰 반향은 생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소위 고정간첩들에게서 보이는 고도의 심리변화(제 아무리 이 나라 이 땅에 발 붙인지 오래되었다고 해도 가질 수 밖에 없는 불안감 따위)나 세월이 흘러 변해버린 남북한의 환경을 고려해서 다분히 입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할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가 나중에 보여줄 강렬한 액션장면과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함에도 다소 작위적이고 일차원적 대응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탈북 고위인사를 직접 제거하기 하기 투입되는 장면과 북에서 내려온 상급자와의 도심 추격전에서 보여준 화끈한 액션장면은 비교적 인상적이었지만 이 역시도 다른 영화에서 수도없이 보아왔던 체이싱 장면에서 크게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물론 관객을 심리적으로 동화시키지 못한 채 무턱대고 쫒아만 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성에 안차는 이유도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제목으로 나온 간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그들을 옹호한다고 어느 편에서 난리 칠 터이고, 그 간첩을 희화해 해버리면 다른 어느 편에서 현실적이지 않다며 자기들 이야기만 주장할 것이다. 영화 서두에 자막으로 나온 것처럼 암약 중인 간첩들이 5만 명은 된다고 한다면, 그들이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다음(DAUM)에서 제공하는 로드 뷰를 활용해 목표물의 거처를 찾아보고, 인터넷 선을 교란시킨 뒤 수리업자로 둔갑해서 집 내부를 훑어본다는 게 너무 나이브해 보이지만 결국 가족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마저 혼란을 겪게 만들 정도로 간첩들이 희화화 되었다는 게 嘲笑스럽다. 그런 이유에서 이 영화는 즐기고 잊어버리기에 적당한 상업 오락영화일뿐 결코 특정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영화는 아닌 셈이다. 아직은 그렇게 까지 대한민국에서, 영화 일각에서 살짝 비춰지는 수준의 생각의 자유는 담보되지 않았다고 본다.    


김명민은 파괴된 사나이, 연가시에 이어 다시 한번 父情에 사로잡혀 동분서주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민호 감독과 손을 잡았다. 그와 유해진의 격투신은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강렬했다. “간첩”들이 생각보다 내공이 있는 모양이다.

 

 

 

 

 

 

 

 


간첩 (2012)

6.3
감독
우민호
출연
김명민, 유해진, 염정아, 변희봉, 정겨운
정보
드라마, 코미디, 액션 | 한국 | 115 분 | 201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