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소감 : 이 영화가 퇴폐스러운가? 아니면 현실이 더 퇴폐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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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폴로니드 : 관용의 집은 1900년 초반 파리의 유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유곽에서 일하는 밤의 꽃들이며 그녀들을 상대하는 남자들은 스스로를 고급손님이라 했다. 이 영화는 몸을 파는 여성을 피동적인 인물로 그리는 대신 그 당시의 파리의 데카당스한 분위기와 맞물려, 그녀들의 일종의 숙명을 사회문제화 시켜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기말이란 100년 주기로 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12월 세기말을 밀레니엄이라 이름 붙여놓고 사람들은 자연 앞에서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초조함 속으로 밀어넣어가며 그 분위기를 즐겼다. 마치 대재앙이나 카오스 현상에 휘말려 종말을 맞이할 거라는 둥.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 전인 1899년 파리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돈과 권력을 지닌 남성들은 마치 해야할 일이라는 게 유곽에 들러 자신의 남성을 굳건하게 내보이며 숫컷으로서의 웅위함을 자랑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성적 파트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평생 반려자가 아닌 스치는 인연일 수 밖에 없는 유곽의 여자들이었을까? 라폴로니드는 가진 자 만이 드나들 수 있는 그들만의 아지트였다. 아무나 올 수 없기에 또 아무나 이곳에서 일 할 수 없었다. 여주인이자 포주는 나름 선수 선발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암묵적 질서가 존재했다. 장시간동안 그녀들의 생활이 보여지는 와중에도 절대 그녀들끼리는 질시하거나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였다. 그게 그곳의 불문율이자 그녀들이 상대하는 남성들에게 호감을 산 이유라 했다.
유곽을 그린 영화라고 해서 정사 장면만 나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녀 한 사람 한 사람의 에피소드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고 그녀들의 입장이 불현듯 안되어 보인다는 긍휼감이 들 때쯤, 큰 사고가 하나 터지고 그때부터 라폴로니드의 운명은 예견되었다. 열다섯 시골 소녀의 등장과 퇴장, 매독에 걸린 여성, 마약에 찌든 여성, 나름 애인이라고 여겼던 남성으로부터의 배신, 빚을 갚지 못한 채 시름겨워하는 여성, 그리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여성으로 상징되는 당시의 여성들. 수 백 년간 여성을 속박하던 코르셋에서 벗어난 듯 하지만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남성 우월주의가 가져온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장사가 안 되자 외부로 출장 서비스까지 나가는 라폴로니드의 여성들, 누구는 고상하게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차를 마시고 누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서빙을 한다. 그리고 마치 벌레를 보듯 그녀들을 보거나 음탕한 눈빛으로 욕정의 대상으로 그녀들을 보는 또 다른 파리지앵들.
여성들은 이 유곽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당장 없애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춘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자조적인 언사에 따라 비록 라폴로니드는 사라졌지만 거리로 나온 밤의 꽃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이 영화의 엔딩은 그래서 씁쓸하다. 갑자기 오늘날의 파리를 비춘다. 100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고풍스런 저택 안에 머물던 그녀가 거리에 서있을 뿐이다.
영화 막바지 가면놀이를 한다. 고육책이다.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마지막 영업을 하는 셈이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희열을 느끼는 남성들, 장미 꽃잎이 시나브로 떨어진다. 그녀들의 염원은 답을 구할 수 있을까 함께 흐르던 무디 블로스의 명곡 Night in white satin이 여운을 남긴다.
라폴로니드 : 관용의 집 (2012)
House of Tolerance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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