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엘 불리 요리는 진행중 - 새로운 맛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효준선생 2012. 9. 16. 00:25

 

 

 

 

 

18개월 동안 주방에서 일한 적이 있다. 물론 타의에 의해서였지만 평소에 음식만드는 걸 좋아하던 차에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곳에서의 일은 노동에 버금갔다. 머리를 쓰기보다는 몸이 고달픈 곳이었다. 대신 손님으로 먹어본 음식을 직접 만들어 낸다는 것이 그나마 즐거움이었다. 고참들은 신참을 향해 늘 같은 소리를 해댔다. 이곳에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칼에 베고 뜨거운 물에 덴다고, 주방은 톱니바퀴 돌아가듯 해야 하는 곳이라고. 맞는 말이다. 고참이 되면 이런 소리가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스페인의 유명 레스토랑 엘 불리, 미슐랭 가이드에는 물론이고 많은 전문가들이 극찬해 마지 않는 곳,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그곳은 이른바 분자요리로 불리는 극단적인 레시피로 유명하기도 하다. 남들은 잘 활용하지 않는 재료를 그램단위로 잘라서 그걸 저울에 달아 각기 포장해놓고 사용한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매번 같은 모습이다. 영화 엘 불리 요리는 진행중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단 한마디의 대사 간섭도 없이 카메라만 들고 그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이곳의 주인인 페란의 일상을 담았다. 일상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주방에서 맴돈다. 한국에선 구경도 못한 재료들을 손질하고 칼질하고 저장하는 장면들이 무려 러닝타임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식당의 독특한 운영방법 때문이다. 일년중 6개월만 문을 열고 나머지 6개월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삼는다.

 


영화 앞 부분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장면이 연속으로 나오는데 바로 이 쉬는 6개월 동안 책임 쉐프들의 일상인 셈이다. 즉, 영업을 쉬는 것이지 식당 본연의 일을 쉬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주방에서 필요한 견습생과 스탭들은 시즌이 다가오면 새롭게 충원을 하고 일 년 치 손님도 매년 1월에만 예약을 받는다. 그럼에도 대기자들은 줄을 섰고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음료수 한 잔 마실 수 없는 곳이 이곳이다.

 

 

대체 어떤 점이 이곳을 그토록 도도한 영업방식을 견지하는데도 사람의 환영을 받게 했을까? 이곳에선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특유의 재료로 만든 독특한 비주얼의 요리들을 선보이는데, 동서양의 식자재는 총동원되는 듯 싶었다. 레스토랑의 주 메뉴인 스테이크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육식보다는 채식이 대부분이고 특히 젤리와 소스를 활용한 요리들에 주안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이 만들 요리는 우연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몇 명의 요리사들이 달라붙어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 최종적으로 페란의 윤허가 있어야 손님 상에 오른다. 심지오 총괄 수석 셰프 역시도 페란 앞에서는 눈치를 봐야 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6월 초 새롭게 문을 연 엘 불리 레스토랑의 준비과정과 6월 16일이면 정식으로 문을 여는 그곳의 하루가 담겨있다. 특히 매년 전 세계에서 몰려든 셰프와 파티세들이 치열한 선발과정을 통해 이곳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메뉴를 배우는 것보다 이곳의 시스템을 더 배우고 싶어한다고 했다. 개중엔 한국인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손님이 들이 닥치고 분주해주는 일류 레스토랑의 모습은 한국의 식당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대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손님이 원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맞춰내는 솜씨가 바로 이곳의 장점이다.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어야 하는 건 불문가지다. "그까짓 레스토랑 쯤이야" 하기 쉽겠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요리들의 향연은 엔딩 크리딧을 장식하는 고화질의 화면과 더불어 역시 대단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인간은 먹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처럼, 두 시간 동안 오감이 행복해지는 순간을 이 영화와 함께 하면 될 것 같다.    

 

 

 

 

 

 

 

 

 

 


엘 불리: 요리는 진행 중 (2012)

El Bulli: Cooking in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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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게레온 베첼
출연
페란 아드리아, 오리올 카스트로, 에두아르트 차트루히, 에우게니 데 디에고, 아이토르 로자노
정보
다큐멘터리 | 독일 | 108 분 | 201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