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 - 인생의 플랜B는 준비되었나요?

효준선생 2012. 9. 15. 00:03

 

 

 

 

 

삼월 삼짓날이 되면 경주 포석정에선 유상곡수(流觴曲水) 행사가 진행되었다. 술잔을 물길위에 올려놓고 한 바퀴 돌기 전에 시를 지어야 하며 만약 시를 다 짓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그 술잔의 술을 벌주 삼아 들이켜야 하고 그 즈음이 되면 사람들은 긴박함에 다들 폭소를 참지 못한다. 한참이나 오래된 선비들의 풍류를 언급한 것은 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를 보면서 서로 돌아가면서 운율을 맞추는 랩을 하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에서 떠올랐던 단어다.


7년 전 서울 모 지역 힙합 동아리 모임이었던 TRF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진속에서 당시의 패션을 감안할 수 있는 차림새의 앳띤 하이틴의 모습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당시 이 멤버이자 지금은 군복무후 인생의 새로운 모색을 하는 스물 네 살의 청춘 정대건은 마이크 대신 카메라와 메가폰을 들고 이를 찾아나섰다. 그로부터 1년 뒤 완성된 필름은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된 그들 멤버 일부의 이야기를 담았고 그들의 목소리는 세대를 공유하는 다른 청춘들에게 아파니까 청춘이다가 아닌 청춘은 하기 나름이다라는 보다 능동적이고 희망어린 제안을 던져놓았다. 


이 영화의 미덕은 등장인물에 대해 매우 오픈된 자세를 취하고 있음에 있다. 인터뷰이로 나오는 사람들은 감독이자 선후배인 정대건에게 성의껏 조언과 경험과 현재를 이야기 한다. 심지어 감독의 앞날을 걱정하는 멘트까지 섞인다. 이쯤되면 형이 동생에게 하는 이야기다. 아니, 감독의 친 어머니와 누나까지 나오며 청춘들에게서 들을 수 없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로 균형을 잡아간다.


대략 10여명쯤 되는 것 같다. 같은 멤버였지만 지금은 다들 각자의 분야에서 한발 도약을 꿈꾸는 인생들, 여전히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고 있기도 하고, 재무설계사, 수학강사, 포항공대 대학원생, 공무원 준비생까지 그 언제 힙합동아리 멤버였을까 싶은 사회인이 다된 친구들도 등장했다. 그들은 여전히 음악에 빠져있는 친구들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 돈은 언제 벌고 결혼은 언제하고 나이가 더 든 뒤의 노후대책은 어찌 할 것이냐?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로는 감독 정대건의 속셈은 다 채우지 못했다. 언더그라운드 랩퍼지만 여전히 꿈을 먹고 사는 친구들, 그저 피처링이라는 타이틀만 멋진 세션맨 일뿐이지만 그들은 노래한다. 세상에 대고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는데 랩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되면 거리에 나가 즉흥적인 프리스타일 랩으로 배틀을 건다. 또 누군가는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 때문에 단박에 스타가 되기도 하고 간혹 대회에 나가 많지 않지만 상금도 받아온다.


7년 이란 세월은 사람을 바꿔 놓을 수도,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변함없이 한 우물만 파기에도 길지 않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감독이 철없다며 애정어린 꾸지람에 10년은 해봐야 않겠냐는 말을 한다. 우린 10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히 뭔가를 해본 일이 있었던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 최우선이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 거의 없어 보인다. 영화 속 인물 중에선 솔직히 부러운 입장에 있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을 부럽다고 말하는 걸 한 장면도 보지 못했다. 랩퍼들에겐 자존심이 생명이다. 그리고 다들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잘 생겼다. 예능감도 있고 말도 잘한다. 머리 나빠서는 순간적으로 뱉어내는 랩을 해낼 리 없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자신은 과거의 랩퍼가 아니다라며 발을 빼던 정대건 감독도 한 수 뽑아낸다.


감독의 어머니가 물었다. 비행기도 배도 앞이 안보이면 뜨지 않는다. 인생도 앞이 안보이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느새 인생의 플랜B를 찾아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일까 세상 무서운 것도 없었던 17, 18살의 청춘들이 호구지책을 걱정할 나이가 된 것은 틀림없지만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힙합정신은 결코 올드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술잔이 한 바퀴 돌고 자신 앞에 왔다. 여러분은 이제 자신의 차례에서 무엇을 보여줄 준비가 되었는가  

 

 

 

 

 

 

 

 

 


투 올드 힙합 키드 (2012)

Too Old Hip-Hop Kid 
9.5
감독
정대건
출연
정대건, 투게더 브라더스, 장지훈, JJK, 허클베리 피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7 분 | 201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