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더 레이디 -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효준선생 2012. 9. 6. 00:01

 

 

 

 

 

1960년대만 해도 버마는 전쟁이 끝난 직후의 한국보다 잘 살았다. 특히 축구도 잘해서 한국에게 이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전을 겪고 군부 독재가 장기간 이어지며 지금의 미얀마는 잊혀진 나라가 되고 말았다. 동남아시아 변방국가인 미얀마의 역사를 읊조리는 이유는 바로 영화 더 레이디 때문이다. 현존하는 민주 투사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아웅산 수 치 여사의 거의 반평생 일대기가 이 영화속에 녹아 있는데, 그들의 인고의 시간들이 마치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동질감 속에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소위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식민지 경험을 겪었는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 미얀마는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내전이라고 해봐야 세상 사람들이 관심도 별로 갖지 않았고, 인근 국가처럼 제3국이 개입해 전면전으로 치닫지도 않았던 까닭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자유나 민주에 대해 국민들이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폐쇄적인 정책을 지향했다는 반증이며 그저 군부 통치자 네윈의 이름만 오르 내릴 정도 였으니 간혹 아웅산 장군이 반군의 수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영화는 민주정을 도모했던 아웅산 장군 사후부터 그의 딸인 아웅산 수 치의 영국행과 결혼, 양육을 거쳐 병상의 어머니 간병을 이유로 귀국한 뒤, 그녀의 행동반경을 다소 거칠게 표현해 냈다. 실존인물에 한 나라의 현대사를 뭉뚱그려 집어 넣은 탓에 다큐멘타리처럼 보이지만 그녀 주변 인물, 특히 그녀의 남편인 에어리스 박사의 헌신적인 외조엔 눈시울이 붉어진다. 작고 가냘펴 보이는 한 여성의 어깨에 일국의 민주화라는 거대한 짐이 지워졌고 이를 거부하지 않은 채 숙명처럼 밀고 나갔던 그녀의 모습과 그녀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하던 남편의 마치 두 바퀴와 같은 삶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대신 미얀마 군부를 대표하는 네윈과 그들의 졸개들의 움직임은 다분히 면죄부를 주는 모습으로 양보한 듯 싶다. 수 치 여사가 초반, 민주화를 요구하는 동료들과 유세에 나섰을때도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듯한 모습이 그랬으며, 잔혹하기만 해보이는 졸개들 중에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갈등을 희석시켜려 하는 듯 싶었다.


이 영화 촬영후 중국배우인 양자경은 미얀마 입국이 불허되는 해프닝을 겼었으며, 무려 15년이라는 장기간 가택연금하에서 한때는 단식을 해가며 홀쭉해진 모습등을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왕년의 액션 배우라는 사실은 찾아 보기 힘들었다.


비록 민주화 투쟁의 꽃처럼 인식된 그녀는 가족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은 적 없었다는 조국과 비명에 간 아버지의 원한을 위해서라도 그 길위에 설 수 밖에 없음을 이 영화는 리얼리티를 잘 살려내 보여주었다. 특히 그녀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음에도 국외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대리수상한 아들이 낭독한 인사말을 텔레비전도 아닌 건전지 라디오로 듣는 모습은 숙연하게까지 했다.


쉬운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무엇이 그녀를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지게 만들었을까? 그저 운명이니 주어진 길이니 하는 수사는 낯 부끄럽다. 눈앞에 보이는 열망이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그녀가 대중연설을 처음 하던 때가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영국인 남편을 둔 아내의 모습에서 완전하게 탈피하지 못한 상태임에도 그녀는 조국을 위해 소명을 다해보겠다고 하는 모습. 그때만큼의 진실함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녀도 없을 것이다.


독재자가 군림하다 못해 다시 그 여식이 만인지상이 되겠다고 하는 요즘, 비록 세상과 시대와 여건은 다르지만 여걸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녀가 설사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미얀마가 과거의 영화를 누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나라, 작은 일을 하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라, 그렇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 지도자가 그립다.

 

 

 

 

 

 

 

 

 


더 레이디 (2012)

The Lady 
9
감독
뤽 베송
출연
양자경, 데이빗 튤리스, 윌리엄 호프, 사하작 본다나킷, 티라왓 멀빌라이
정보
드라마 | 프랑스, 영국 | 132 분 | 201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