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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 2012년 우리가 이런 '왕'을 기대하는 이유

효준선생 2012. 9. 4. 00:51

 

 

 

 

조선의 왕들은 생전에 자신의 시호(諡號)나 묘호(廟號)를 알지 못했다. 자신의 조상들이 어떤 시호나 묘호로 불리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것은 알지 못한다는 건 죽음 그 이후 남겨진 자들의 권한이라고 보았고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한 명의 왕이 살아생전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를 한 글자로 집약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시호이기 때문이다. 太, 世, 成, 仁, 賢처럼 그럴 듯 한 묘호는 언감생심이지만 아무 한 일도 없이 사망하거나 한참 모자라는 짓을 한 왕이었다고 해서 아무거나 막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스물 일곱 명의 왕 중에서 朝, 宗의 딱지를 얻지 못한 왕이 있었으니 바로 燕山君과 光海君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에게 왕의 묘호가 아닌 그냥 君이라고 불렀으니 사람들은 그들을 왕이 될 깜냥도 못될 정도로 막 되먹은 인간으로 간주하지는 않을까?

 

 

 

 

 

수많은 소설과 영화, 연극을 통해 그들을 조명한 컨텐츠는 많았다. 대개는 불우한 성장기를 거치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비교적 측은지심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역사서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가 만약 그들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한 승자의 입장에서의 기술이라면 그 역사서가 균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역사가 제아무리 승자의 차지라고 해도 특히 광해군의 치적을 따져 나가보면 반드시 “몹쓸 놈”만은 아니었음이 바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기본 아이템이다.


영화는 광해군 재위 8년(1615년) 2월 28일을 조명한다. 나인들의 손길에 의해 멋지게 멋을 낸 왕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는 늘 주변의 감시와 심지어 독살, 암살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어느 시대 어느 왕 치고 이런 불안감에서 벗어난 자가 없었으나 무려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은 흉흉하고 당파 싸움에서 권력을 손에 쥔 黨人들은 자신을 백안시 하던 중전과 임금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광해군 스스로가 왕위에 오르는 길이 얼마나 至難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편안히 발 뻗고 잘 수가 없었다. 영화 오프닝에서도 나오지만 죽염으로 간을 하는 바람에 은수저가 검게 변한 것으로 수랏간 나인들을 문책하는 장면들이 바로 그것이며 영화의 모티프가 된 15일 간의 변고도 실상은 이런 광해군의 불안심리에서 작용했을 것이다.

 

 

 

 

 

 

역사에 따라 광해군은 昏主라 칭해지지만 그가 주창한 대동법, 고리대로 인해 가난한 서민들이 노비로 팔려나가는 문제, 조세부과 및 군역과 관련된 호패법, 그리고 명나라와 후금(나중에 청나라)과의 사이에 끼어서 실용외교를 펼치는 부분들이 바로 영화에서 핵심적은 줄거리가 된다. 겉으로 보면 진짜 왕과 가짜 왕의 역할 주고 받기가 영화의 얼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극적 재미를 위한 것들이고 결국은 진정으로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가는 “킹”의 역할이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 이 영화는 묻고 대답을 해준 셈이다.

 

영화는 편집이나 전개과정에서 크게 덜그럭거리지 않고 상당히 안정되어 보였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템포도 일정하고 극적 반전을 노리며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다. 실존 인물인 만큼 혹시라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일부러 흠을 내가며 그를 폄훼하거나 영웅시 하지도 않았다. 대신 폭군이라고 알려진 그의 일기 속에서 그가 이루고 싶어했던 개혁군주의 모습을 가짜 왕을 내세워 오버랩 시킨 것으로 보인다. 하기사 누가 해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영화에선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이 극중에서 가짜 왕의 멘토 역할을 맡고 있으며 내시인 조내관(역사서에선 김개시), 호위무사인 도부장등이 조력자로 등장한다. 중전 유씨와의 애틋한 멜로라인도 부각이 되며 그저 웃기는 왕, 인상쓰는 왕만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도 그려내며 여성관객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엔딩 자막에 광해군은 5년뒤 인조반정에 의해 축출된다고 했다. 친형의 蒸殺과 어머니뻘인 인목대비의 폐위와 관련, 반대파 당인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비판하는 바람에 그리되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비록 이 영화 속 스토리가 400년 전 궁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지만 오늘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과도 무관치 않다. 여전한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 경제 민주화 주장, 시덥지 않은 정당정치, 특정 국가에 매몰된 외교정책등이 광해군 시절과 무엇이 다른지, 12월 우리들의 “왕”이 되려는 자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반드시 느껴지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8.7
감독
추창민
출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장광, 김인권
정보
드라마, 시대극 | 한국 | 131 분 | 2012-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