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훌리오와 에밀리아 - 첫사랑의 기억이 다 사그라지기 전에

효준선생 2012. 8. 31. 00:34

 

 

 

 

영화 훌리오와 에밀리아의 시작은 독특했다. 훌리오는 살고 에밀리아는 죽었는 말을 반복했다.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이런 내러티브 방식엔 내용은 슬프지만 도리어 호기심이 든다. 왜 이런 말을 하며 시작을 알리는 걸까? 그리고 에밀리아는 왜 죽었을까? 그리고 훌리오와 에밀리아는 대체 어떤 사이일까 하는 그런 궁금증이 마구 생겨났다.


이 영화는 첫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다. 모두 6장절로 된 챕터식 방식인데 홀수는 8년 전 이야기, 짝수는 8년 뒤 이야기다. 시간적 차이가 나서인지 훌리오에겐 덥수룩한 턱수염을 선사했다. 제법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훌리오는 누군가로부터 글을 써보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외뢰인의 알 수 없는 행동 탓에 어떨결에 노트와 잉크를 사서 자기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홀수 장은 훌리오가 써내는 과거의 회상인 셈이다.


학교에서 처음 눈이 마주친 그들, 객쩍은 이야기와 청춘들만이 느낀다는 호르몬으로 서로에게 한발 다가선 그들, 거의 매일 섹스를 하고 동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들 커플에겐 독특한 방식이 있다. 잠들기 전 훌리오가 어떤 책을 한 권 들어 한 페이지 정도를 낭독해 아멜리아에게 들려준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낭독의 즐거움을 房事에 버금가는 의식이라 생각했다. 연상해 보라 젊은 남녀가 알몸으로 누워 남자는 책을 읽고 여자는 그 남자 품에서 새근거리며 잠이 드는 모습을. 아름답다. 훌리오는 아예 헌 책방에서 대량으로 책을 사 놓는다. 그걸 본 아멜리아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을 다 읽으려면 십년, 아니 이십년도 걸리겠다고.


이 영화의 원 영어 제목은 분사이, 즉 분재라는 말이다.  이들은 시들기 쉬운 클로버 잎 두 개로 화분을 만든다. 하지만 오래갈 리 없다. 이내 시든 모습의 클로버 잎,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남녀가 화분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만약 시들기 시작하면 그 커플은 깨질 거라는, 그런 이유로 화분이 시들자 그 커플은 서먹해졌고 이내 헤어지게 되었다는, 그 이야기를 들은 뒤 훌리오와 아멜리아에게 화분 키우기는 어떤 의미일까?


다시 현재로 돌아와 훌리오는 이제 의뢰인의 지시없이도 자신의 글을 쓰는데 익숙해졌다. 노트는 이제 4권째가 되어가고 그 노트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커피 자국, 담뱃재 자국, 그리고 현재의 여자친구가 토해놓은 자국등. 얼룩이 남았지만 훌리오는 그 4권을 모두 완성한 뒤에 노트에 키스를 한다. 그 노트 속 이야기는 자신의 첫사랑의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의 친구로부터 아멜리아의 근황을 전해들었다. 모두에 밝힌 것처럼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훌리오는 울지도 않았다. 그냥 언제부터인지 습관이 된 분재다듬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되뇌였다. 글쓰기는 분재와 같다. 화분 밖으로 나온 나무는 분재가 아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솎아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첫사랑은 어쩌면 화분 밖으로 삐죽 튀어 나온 볼품없는 분재와도 같다. 그런데도 깔끔하게 정리정돈된 값비싼 분재 이상으로 눈길이 가는 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추억때문이다. 이 영화는 보기 드물게 칠레에서 온 영화다. 이들이 머무는 공간이 바로 그 유명한 산티아고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 있는 청춘들의 조경학 개론인 셈이다.

 

 

 

 

 

 

 

 


훌리오와 에밀리아 (2012)

0
감독
크리스티안 히메네즈
출연
디에고 노구에라, 나탈리아 갈가니, 가브리엘라 아란시비아, 트리니다드 곤잘레스, 휴고 메디나
정보
로맨스/멜로 | 칠레,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프랑스 | 95 분 | 2012-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