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토탈리콜 -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효준선생 2012. 8. 16. 00:30

 

 

 

 

2012년 개봉 영화 토탈리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주제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그 남자는 누구인가”다. 기억 속의 기억을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고 주변의 도움과 뜻하지 상황을 겪어나가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게임같은 영화는 적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1990년 폴 버호벤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를 이미 본 관객으로서는 이야기의 결말보다는 시대가 이 만큼 흐른 뒤 리메이크 되는 작품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있나를 들여다 보는 게 이 영화를 대하려는 마음가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 영화에서 근육질 몸매의 아놀드 슈왈츠제너거의 우락부락한 연기와 당시로서는 첨단이라고 일컫던 시각효과등의 대략적인 것들만 기억이 난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개인의 기억 속에 자리한 보다 넓은 의미의 사회 변혁을 위한 몸부림이 당시 영화보다 계급 사회의 그림자를 상당히 깊은 수준의 것으로 끌어 올려놓았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브리튼과 콜로니, 21세기 지구상에 남은 딱 두 개의 공간, 아무래도 영국을 상징하는 브리튼은 지배계층이 사는 곳, 그리고 식민지라는 의미의 콜로니는 피지배계층이 사는 곳으로 이분화 된다. 그렇다고 이 두 곳이 격리된 것은 아니다. 브리튼에서 소구하는 노동력은 콜로니의 주민을 고용해 해소하고, 그들은 생활을 위해 콜로니에서 브리튼으로 출퇴근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만들어 내는 드로이드라는 로봇은 콜로니의 통제를 위해 투입된다. 즉, 자신들이 노동력을 투하하고 생산해 낸 아웃풋은 거꾸로 자신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게 얻어낸 얼마 안되는 재화로 콜로니 사람들은 호구지책을 위해 기꺼이 브리튼을 위해 희생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전형적인 식민지 근성인 셈이다.


물론 역사상 어느 식민지 백성이 100% 복종만 하고 살았겠나. 개 중엔 의식이 있어 지배자에게 저항도 하고 혹은 게릴라처럼 테러도 일으킨다. 하지만 오히려 이들의 행동은 지배자들에겐 좋은 먹이감이다. 콜로니에 지급되는 일종의 기금등을 줄여 그들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드로이드 증산에 전용시켜 버리면 그만이다. 영화에서 지배층의 수장인 코하겐과 저항군의 리더 마티아스의 관계가 그렇다. 그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추격당하는 더그 퀘이드라고 불리는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영화 토탈리콜의 제목에선 사람들은 생각해내다, 수리, 혹은 보상의 의미를 뜻하는 영어단어 recall을 연상하지만 리콜은 개인의 기억을 정돈해주는 업체의 이름이다. 그런 이유로 리콜 社라고 불리며 이 역시 콜로니에 있는 업종이 의미하는 최첨단 시스템에 비해 다소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리콜 社는 콜로니에서 영업중일까 남자는 이 업체의 존재에 대해 처음엔 두려워 했다. 자신의 기억을 기계의 조종에 내 맡기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그러나 승진에서 누락되고 더 이상 기계처럼 부림을 당하는 삶을 거부하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그는 결심한다. 설마 이보다 더 나빠질 게 있겠는가. 마치 성형수술로 새로 태어나겠다고 마음 먹은 추녀의 마음가짐과 진배없다.


그런데 영화는 바로 이 시점, 즉 더그가 리콜 社를 찾아 환상의 모험속으로 빠져들려는 찰나부터 그게 현실인지, 아니면 새로운 환상의 시작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사람이 총을 맞고 죽어나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일종의 환각일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이 영화가 뒷부분에서 수미상관의 짜임새를 포기하고 그냥 밀어 붙임으로서 리콜 社의 작용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뭉개버린 셈이다. 그 대신 여러차례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을 불사하고 더그가 칼 하우저라는 인물이었음을 상기 시켜주려는 한 명의 여인의 존재를 통해 이야기 국면을 전환시키고 있다.


이 점은 이 영화의 옥의 티가 될 수도 있다. 리콜 사를 찾아간 더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온갖 수난의 연속을 극복하면서 스스로 각성한 것이지 결코 리콜 사의 기계의 도움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를 마치 이중간첩으로 치부해버리고 그를 제거하려는 또 다른 조직의 임무가 이 영화를 다소 복잡하게 만든 요인이 된다.


식민지 주민으로 살기를 거부하여 전선에 나섰던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기억을 매개로 구호와 제거 사이에서 모든 인물들은 전투를 불사한다. 그가 그럴 정도의 비중이 있는 지는 영화가 다 끝나고도 잘 알기 어렵다. 그 보다 더 높은 상관도 맥없이 죽는 판에 영화가 다 끝나가는데도 혼미한 정신상태로 얼떨떨해 하는 인물, 사랑하는 아내의 정체를 알고서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쩔쩔매는 그를 보면서, 과연 저런 인물이 수많은 대중을 이끌 리더쉽에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회변혁은 말로 떠들거나 무력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국토 통일은 말위에서 가능하지만 일국을 통치하는 데는 馬上가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했다.


콜로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의 미술을 잘 보면 동양권 국가의 그것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중국어, 태국어, 드물게 러시아어도 보인다. 물론 한국어도 두 차례 등장한다. “이십오” 와 “리콜” 이다. 동남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수상가옥등의  건축구조물이 인상적이다. 다른 영화보다 유난히 동양권 배우들이 많이 나오면서(물론 대부분 콜로니의 주민으로) 친숙하게는 느껴지지만 약간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일명 호버카로 불리는 자기부상 자동차의 체이싱 장면, 더그와 아내의 지붕 추격전, 대륙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인 엘리베이터 “폴”, 그리고 미래 도시의 모습처럼 보이는 곳에서의 육탄전과 추격전은 이 영화의 백미다. 전체적인 줄거리보다 액션신에 좀더 높은 점수를 주고픈 영화, 못사는 곳으로부터의 계급 사회의 변혁을 여전히 시큰둥하게 보고 있는 감독의 주관등이 영화 토탈리콜의 핵심적, 혹은 부수적 사항들이다.     

 

 

 

 

 

 

 

 

 

 


토탈 리콜 (2012)

Total Recall 
6.8
감독
렌 와이즈먼
출연
콜린 파렐, 케이트 베킨세일, 제시카 비엘, 브라이언 크랜스턴, 에단 호크
정보
액션 | 미국 | 118 분 | 201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