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얼음빼내려다 역사공부합니다.

효준선생 2012. 8. 13. 00:06

 

 

 

 

궁궐에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제 아무리 천하의 군주인 왕이라고 해도 더위 앞에선 도리가 없습니다. 요즘처럼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으니 옆에서 큰 부채를 들고 있는 나인이나 환관을 독촉할 테죠. 그래도 그다지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입은 옷도 통풍이 잘 안되는 탓에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립니다. 체통이 있으니 시정잡배처럼 웃통을 까고 있을 수도 없고, 복사열에 전각내부는 이미 뜨거워질대로 뜨겁습니다. 이렇게 조선시대 왕들의 여름나기는 힘겨웠습니다.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바로 얼음입니다.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실내 곳곳에 놓아두고 얼음에서 나오는 냉기로 더위를 식히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여름에 지금처럼 냉동고도 없는 그 시절에 얼음은 어디서 났을까요?


한 겨울이 되면 한강엔 채빙사가 나섭니다. 氷夫들을 데리고 적당한 두께로 얼어있는 자연그대로의 얼음을 캐내서 한강 인근에 있는 빙고 안에 저장을 합니다. 지명으로 남아있는 서빙고와 동빙고에는 당시 궁에서 사용하던 얼음 저장창고가 있었죠. 임금님이 더운 여름을 무탈하게 넘길 수 있는 귀중한 물건이니 함부로 다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임금님만 사람인가요? 민초들도 한 여름은 견디기 힘듭니다. 얼음 한조각이면 더위먹은 아이들 병도 고친다하지만 얼음은 전매 상품인 탓에 민간에선 구하기 힘이 듭니다. 돈 좀 있으면 뒷 구멍으로 사다 쓰기도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부르는 게 값인 상황입니다.


백성을 생각하는 임금님은 이를 긍휼히 여기사 민간에서도 얼음을 사고 팔 수 있는 권한을 민간업자에게 양도를 하는데, 바로 이 부분에 탈이 난 것입니다. 이른바 독과점이죠.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시장에만 맡겨두니 이런 병폐가 끊이질 않습니다. 심지어 임금님 전용이라고 할 수 있는 서빙고의 얼음까지 손을 대려는 모양입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바로 이 조선시대 귀하디 귀한 얼음 탈취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고, 미리 이런 역사 속 이야기를 알고 본다면 더욱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덕무라는 서얼 출신의 남자와 빙고 관리 책임자로 있다가 반대파의 숙청으로 쫒겨난 또 다른 남자가 세상에 복수를 하기 위해 얼음을 탈취한다는 설정은 마치 케이퍼 무비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하기에 각기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멤버를 끌어 모으고 그렇게 모이다 보니 10여명이나 됩니다. 도굴 전문가, 폭약 전문가, 운송 전문가, 정보 전문가 등등 심지어 변신의 귀재까지 있습니다. 이들은 이덕무의 조율에 따라 서빙고를 털 생각을 하는데, 여기에 숨겨진 역사의 비밀이 한 자락 더 들어가 있습니다.


비운의 사도세자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정조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니 마치 사실처럼 보이는 픽션입니다. 얼음과 금괴, 그리고 탐관을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장부를 찾아나선 이들 무리들. 늘 유쾌한 모습의 차태현을 위시로 개성 만점의 조연들의 재미있는 연기가 나름 괜찮습니다. 돈도 많이 들어간 듯한 미술등을 감안한다면, 이 영화는 스윙 폭만 조금 조절 했으면 장타가 나올 법한 영화입니다.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앞으로 쭉 나가지 못하고 리와인드를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멜로라인이 너무 많습니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커플을 억지로 매칭시키려 함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더운 여름입니다. 얼음 한 조각만으로도 시원함을 느꼈던 우리 조상들의 인내심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에어컨을 틀고도 시원하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영화를 보는 두 시간 정도는 더위를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말이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12)

7.9
감독
김주호
출연
차태현, 오지호, 민효린, 성동일, 신정근
정보
시대극, 액션, 코미디 | 한국 | 121 분 | 201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