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광대를 위한 발라드 - 우리는 슬퍼서 웃고 그들은 그런 우릴 보고 비웃는다

효준선생 2012. 8. 10. 00:13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났지만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군부 출신들은 비어있는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가며 기나긴 독재의 서막을 알린다.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할때까지 스페인은 무적함대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유럽의 그저 그런 변방 국가로 명맥을 이어나갔다. 프랑코 독재정권 말기 지독한 폭력과 억압에 짓눌려 그 자체가 삶이 되어 버린 민중들은 어느새 저항이란 먹고 사는 일 앞에선 사치라고 생각을 했고 그로 인해 경제지표는 안정된 것 같은 착시현상을 보였고, 사람들은 골치아픈 정치 이야기보다, 그저 웃고 떠들며 즐기는 삶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영화 광대를 위해 슬픈 발라드의 시대적 배경은 바로 프랑코 독재 시절을 관통하고 있다. 독재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는 가장 적확한 잣대는 사람들의 생각이 자유롭게 외부로 표출되고 그걸 사람들이 또한 부담없이 받아들일 때인지 여부다. 자신이 정부에 반대의사를 피력했다고 해서 잡혀갈 것을 두려워 해, 자기검열을 하거나 혹은 각종 이권을 위해 정부와 결탁하며 자신보다 힘이 약한 자들을 누르려고 하는 세상이라면 그게 바로 권력에 의한 독재다. 프랑코는 40년에 가까운 독재 시절을 스페인의 호시절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40년이 가까워 오는 오늘날, 과연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시절이 독재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컬트적이기까지 하다. 힘센 자에 의한 폭력이 난무하고 그 결과물이 처참하다. 발가벗겨 진채 숲속에서 도망을 다니며 생식을 하고 인간에게 잡혀와서는 마치 개처럼 행동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은 폭력이다. 그렇다고 도망을 치거나 환멸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순응하며 그게 사랑일 거라 믿는다.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살 거라며, 인이 박힌 셈이다.


아버지를 비명에 가게 한 하비에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슬픈 광대가 된다. 웃긴 광대의 반대편에 서서 그가 쏟아내는 각종 오수를 다 받아내야 한다. 그래서 슬프지만 자신은 그것도 감지덕지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가 이 모든 것은 잘못되었음을 감지하고 난 뒤의 그의 생활은 파괴된다. 늘 쫒기듯 살아야 했고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웃긴 광대에게 난도질을 한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다.


이 영화의 시작은 묘하게도 프랑코 독재시절의 스냅사진들로 채워졌다. 군인들, 정치인들, 그리고 퇴폐적 분위기가 물씬 나는 연예인들의 포즈들.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는 폭력의 주고 받음이다. 자신에게 눈 한쪽을 잃은 대령, 심지어 독재권력자 프랑코까지 등장한다. 마음에 둔 여인을 놓고 같은 광대이자 갑처럼 운신하는 웃긴 광대의 집요함은 이 영화가 지향하고 싶어하는 분야가 어디인지 확인시켜 준다.


놀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사람들에게 서커스는 가장 큰 오락거리였다. 그러나 그 이면의 세상은 살육이 빈번하고 너를 죽여야 내가 사는 아수라장이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 모두가 세상을 풍자하는 메타포들이다.


영화의 힘은 뒤로 갈수록 폭발한다. 스스로의 얼굴에 자해를 하는 하비에르, 아버지의 복수를 갚기 위해서라기 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처럼 보였다. 어느 서커스 단원들의 이야기로 꾸며지기에 아슬아슬한 서커스 장면도 여러차례 나오지만 그것 역시 당시 최고의 오락거리를 앞세워 민중들의 귀와 눈을 정치적인 것에 쏟지 않게 하기 위한 부흥책이었다. 주요인물들은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칼만 휘둘러 대지만, 이내 지쳐 쓰러져 서로를 보며 쓰게 웃는다. 미모의 공중곡예사로 비유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한 한판 대결로 보였다.


독재 권력자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눌림을 받은 스페인과 한국, 그 궤도가 많이 흡사해서 놀랍긴 하지만 왜 한국에선 아직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건지, 어쩌면 독재를 독재라 부르지 못할, 독재의 주범이 상왕처럼 여전해서인가. 영화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는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2012)

The Last Circus 
9.1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출연
카를로스 아레세스, 안토니오 드 라 토레, 캐롤리나 방, 산티아고 세구라, 페르난도 길리엔 쿠에르보
정보
코미디, 전쟁 | 스페인, 프랑스 | 107 분 | 201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