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차가운 열대어 - 인간 본성, 그 끝자락에서 만나다

효준선생 2012. 8. 8. 00:09

 

 

 

 

 

지치는 삶을 살고 있는 남자에게 어느 날 닥친 일 하나가 그의 삶 자체를 완전하게 뒤바꿔 놓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폭력이라는 현실에 어느새 적응과 반작용의 후유증은 컸다.

 

영화 차가운 열대어는 담대하지 않고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거칠고 폭압적이다. 열대어 체인점을 운영하는 노인은 현실에서는 악의 화신이라고 할 정도의 여러 가지 캐릭터의 총합이다. 관상어를 사러 온 영세 관상어점 주인에게 계약금을 갈취하고는 그들을 죽여버리고, 그 사체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인 방식으로 解肢한다. 여기에 운 나쁘게 말려든 역시 작은 관상어점 주인 샤모토는 그가 쏟아내는 언변에 휘둘리며 졸지에 끄나풀 신세가 된다.

 

샤모토는 소위 말하는 무력한 남자다. 몇 년 전 사별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빠말이라고는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 딸과 얼마 전 재혼한 아내와 살고 있다. 이 여자는 남편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자신을 계모로도 인정하지 않는 딸에겐 폭력을 당하고 산다. 작은 공간 안에서 가족이라는 허명만 뒤집어 쓴 채 하루를 마트에서 사온 냉동식품으로 때우는 이들. 영화는 톡 하고 건드리면 터져야 마땅할 텐데도 그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어느 소시민의 가정에게 견디기 힘들 정도의 폭력을 가하게 될 때 일어날 수 있는 반응을 지켜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주인남자 샤모토다. 딸은 대형 관상어점에서 서비스를 하고, 아내는 이미 노인에게 농락당했다. 하지만 샤모토는 이런 상황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허둥댄다. 급기야 범죄 현장에 끌려다니면서 어느새 공범처럼 취급을 받고, 노인이 가하는 말과 신체적 폭력 앞에서 자신도 제어할 수 없었던 반응을 보인다.

 

수조안에 갇혀 하루 종일 맴맴도는 열대어들은 사람들의 눈요기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도 그런 관상어처럼 산다. 열심히 살아도 판매가 되어 사람이 꺼내주기 전엔, 혹은 죽기 전엔 그 수조를 빠져나갈 수 없다. 하지만 관상어들도 언제는 자연에서 헤엄치며 살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조에서 빠져나와 계곡물로 돌아간다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그야말로 참기 힘들 정도의 고어와 슬래셔 장면으로 피칠갑이 난동한다. 스크린 밖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을 것 같은 폭력의 끝에선 사람들에게 남겨진 것은 별거 아니었다. 산다는 것은 칼에 베일 때처럼 고통이다. 아버지가 혼자 남은 딸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다. "살고 싶냐? 혼자서 스스로를 지키며 살 수 있냐? 삶이란 원래 아픈거다..." 딸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자신이 없다.

 

이 영화가 거칠고 잔인해보이는 이면엔 주요인물들의 트라우마때문이다. 어린 시절 잘 못을 저지르면 아버지로부터의 무자비한 폭행을 그저 몸으로 받아내야 했고 오늘날 무라타의 살육현장은 어린 시절 자신이 혀를 깨물며 감내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뒤틀린 삶을 살고 있다. 남의 부인을 겁탈하고, 남의 딸에게 눈독들이며 그 아버지를 겁박한다.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성적 폭력이나 다름 없는 일을 당하고도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뿔테안경을 쓰며 유약하게만 보이던 남자가 타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안경을 벗어던지자, 그때부터 사람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별 말도 안하고 살던 그가 보여준 180도 달라진 모습들은 섬뜩했다. 주인을 잃은 열대어들은 이제 차가운 계곡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대하던 등장인물들 사이의 밀고당김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력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 지에 대해 서늘하게 표현해낸 일본 영화 차가운 열대어였다. 

 

 

 

 

 

 

 

 


차가운 열대어 (2012)

Cold 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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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소노 시온
출연
후키코시 미츠루, 덴덴, 구로사와 아스카, 카구라자카 메구미, 카지와라 히카리
정보
스릴러, 공포 | 일본 | 144 분 | 201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