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말리 - 당신의 이야기도 누군가에 의해 씌여질까요?

효준선생 2012. 8. 4. 00:51

 

 

 

 

 

한 명의 인물의 인생역정을 영상을 이용해 두 시간동안 다 풀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의 인생사가 별 볼일 없어서가 아니라 화면에다 사용할 수 있는 소위 참고 자료가 그만큼이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세상을 떠난지 벌써 30년이나 된 사람의 이야기를 오늘날, 되살린다는 건 기술력만 가지고는 안될 것이다. 그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했을 것이다.


1994년 한국 음악계엔 난데 없이 레게음악이 붐을 이루었다. 그 전만 해도 레게 음악이 한국의 대중가요에 차용된 바 거의 없었거니와 본토박이 레게음악은 미국의 팝이나 락에 밀려 제 자리를 찾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제3 세계의 음악장르에 유난히 인색한 한국시장에서 레게는 독특하게 한국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소개되었고 그 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룰라, 투투, 김건모, 마로니에등의 노래에 구색용이나마 레게음악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며, 오로지 레게 음악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팀 이름마저 닥터레게로 한 그룹도 나왔으며 요즘 한창 인기좋은 바비 킴도 이 그룹의 일원이었다. 당시에 소개된 이런 음악들을 들으면 마치 하와이나 플로리다 해변가 비치파라솔 밑에서 열대과일 주스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레게는 자메이카 민초들의 슬픔이 기초가 되어 시작된 장르였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밥 말리였고 1994년 한국에 레게음악이 소개될때도 분명 그의 그림자가 뒤늦게라도 전파된 영향이 크다. 1981년 봄 그가 암으로 사망한 나이 겨우 36세, 뮤지션으로 한창때인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고하려는 순간,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흔히 레게파마로 알려진 드레드락스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던 그. 가난하고 열강의 핍박을 받았던 자메이카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음악을 알게 되고, 그게 그의 인생의 대부분이었다.


영화 말리는 바로 이 자메이카 레게뮤직의 대부이자, 온 세계 레게 뮤지션이라면 그의 음악을 추앙하지 않을리 없는 밥 말리의 일생을 기록한 영상물이다. 다큐멘터리임에도 사진과 영상, 인터뷰 장면과 공연모습, 그리고 그를 아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비교적 짧지만 화끈하게 살다간 한 남자의 족적을 되집어 보고 있었다.     


그를 레게뮤지션으로 완성시킨 여러 요소중엔 자메이카의 불안한 현실을 반영하는 로컬 종교와, 여성편력, 드럭, 그리고 열정을 꼽을 수 있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제외하면 윤리적 잣대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경계인의 삶을 산 것인데, 그 원천은 바로 그가 혼혈이라는 태생적 콤플렉스를 이기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자메이카에 관리로 온 영국인 중년 남성과 자메이카의 어린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백, 흑 혼혈이면서도 자메이카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성을 빼고는 아무것도 물려 받은 게 없는 영국인 출신 아버지에게 정을 느끼지도 않았다.


인터뷰 중에 그가 힘들어 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자신이 외모의 콤플렉스때문에 흑인의 아픔을 대신 노래하면서도 그들에게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흑인들은 자신들에게 비해 비교적 하얀 피부를 가진 그를 자신들의 편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그는 아프리카를 방문했을때 그 어느 곳보다 더 열성적으로 공연에 임했고 설사 최루탄이 터지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열과 성을 다해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여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백인들에게만 발병한다는 흑색종이라는 질환 때문에 목숨을 일었다. 그는 평화를 위해선 흑백의 갈등도, 정파의 갈등도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보았다. 정치적 앙숙을 자신의 콘서트 장에서 화해의 악수를 시키는 모습에서 보듯, 그는 경계인으로 살았으면서도 한없는 자유주의자였다. 자메이카엔선 그의 이름을 딴 국경일이 있다고 한다. 음악으로 세상을 들었다 놓을 수 있는 사람, 흔치 않은 일이다. 천수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후 30년이 지나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는 건, 아마 그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일생을 기록해준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말리 (2012)

Mar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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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빈 맥도널드
출연
밥 말리, 지기 말리, 리타 말리
정보
다큐멘터리 | 미국, 영국 | 120 분 | 2012-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