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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와이언 레시피 - 사람은 누군과와 만나기 위해 살아간다

효준선생 2012. 7. 21. 00:13

 

 

 

 

 

황량한 화산암 덩어리의 산길을 빨간 색 무개차가 달린다. 차 안엔 남자와 여자가 타고 있다. 그곳은 어디인가 바로 하와이다.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는 이곳은 하와이입니다라는 배경적 신고를 시작으로 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하와이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 진주만 공습만 성공했다면 어쩌면 지금 하와이는 자신들의 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래서인지 일본인의 하와이 사랑은 유별난 듯 싶다. 그 화산암 덩어리 섬에서 무슨 정취를 느끼는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하와이는 하와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하와이의 주인은 미국사람이 아닌, 바로 일본인들이다.


오래전 이런 저런 이유로 하와이로 건너와 뿌리를 내리고 살던 그들, 사탕수수 재배공으로, 혹은 그들의 식솔로, 이미 전 세대는 세상을 뜨고 그 후손들이 남았다. 개중엔 혼혈도 있고, 여전히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호노카아 라는 곳은 바로 이들 재하와이 일본인 집단거주지인 셈이다.


일본인 대학생 레오는 이곳에 놀러왔다가 마음에 들어 1년 휴학을 하고 호노카아 인민극장에서 알바생으로 있다. 그 안에서 숙식을 겸하며, 극장 주변에 사는 일본인들과 이런 저런 유대를 맺는다. 87세의 할아버지는 파킨슨씨병을 앓는 부인과 달리 늘 집앞 계단에 앉아 성인잡지를 들추며 소일하고, 동네 미장원 주인은 늘 캐세라세라만 듣는다. 레오가 일하는 극장 여주인은 식탐이 있고, 팝콘을 파는 제임스 할아버지는 늘 졸고 있다. 혼혈인 영사기사는 남아도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완력을 쓰는 바람에 애꿏은 팔뚝에 깁스를 하고 산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캐릭터는 혼자사는 비이상이라고 불리는 할머니다. 오래전 남편을 여읜 그녀는 레오에게 밥상을 차려주며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고 하며, 레오는 그런 할머니에게 친조모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된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도 겹치지 않는 그야말로, 단독 플레이를 한다. 즉, 서로가 어울려 뭔가를 만들어 내기 보다 레오만을 중심으로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있다. 장례식에서만 잠시 얼굴을 함께 비추지만 전체 극 흐름엔 큰 영향은 없다. 그래서인지 일본 영화 특유의 서로가 모여서 시너지를 내는 그런 파워는 부족하고 대신 레오의 캐릭터가 매우 분주해지거나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할머니가 레오에게 만들어 준 음식들은 사진으로 남아 보여주는데, 잘 보면 마치 노인이 하루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와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생을 하와이라는 타지에서의 삶을 사는 어느 노인에게 그 삶의 즐거움이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남들과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고 레오가 일하는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보지도 않았다. 그저 레오가 오면 밥을 해주고 레오와 실 전화를 하는 것 뿐이었다. 실명을 한 뒤 그녀의 집착이 더 강해진 것인지, 아니면 이 정도 살았으면 충분하다고 여긴 것인지, 하와이에 사는 사람은 죽으면 바람이 된다는 말처럼, 그녀가 사라진 날, 하와이엔 바람이 불었다.

 

 

 


이 영화를 일본판 힐링무비라고 불러도 되는 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도시의 생활과 달리 이곳의 시간은 정말 느리게 지나는 것 같아 보였다. 오수를 즐기는 장면도 없는데 다들 슬로우 비젼을 통해 보는 것처럼 느릿느릿해 보였다. 저런 삶이 가능한 곳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초입부분에 이런 자막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살아간다” 본토에서 온 청년 레오에겐 이런 생활이 어쩌면 신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1년동안 그는 이곳에 정을 붙이고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하고 이곳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곳 사람이 본토로 넘어간다면 과연 일주일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일본의 힐링무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가 두 가지 나온다. 할머니가 레오를 위해 가장 빈번하게 만들어준 양배추찜 스튜와 극장에서 파는 직접 구운 빵 ‘말라사다’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호들갑을 떨며 말라사다를 사먹고 블로그에 올린다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졌고, 뜻밖의 카메오 배우가 나오기도 한다.


하와이를 고향으로 여기며 살던 할머니는 보름달이 뜨고 달 무지개가 보일 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하지만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실명을 하고나서야 달이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을 통해 드디어 달 무지개를 보았으니 소원을 빌어야겠다는 말을 한다. 우린, 멀쩡한 눈으로도 달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곳에 살고 있으니 바빠서일까 아니면 늘 그곳에 있겠거니 하고 관심을 두지 않아서 일까   

 

 

 

 

 

 

 

 

 


하와이언 레시피 (2012)

Honokaa Boy 
7
감독
사나다 아츠시
출연
오카다 마사키, 바이쇼 치에코, 하세가와 준, 키미 코이시, 쇼지 테루에
정보
드라마 | 일본 | 111 분 | 2012-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