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 광시곡에서 변주곡을 거쳐 진혼곡으로 끝내주다

효준선생 2012. 7. 18. 00:30

 

 

 

 

 

어둠의 기사가 드디어 한반도에 상륙했다. 그리고 그 감춰진 봉인을 풀었다. 대작이니만큼 하고픈 말, 쓸 이야기는 많지만 이 영화는 기존 SF영화들의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테크닉에 의존한 화려한 볼거리외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들려주고 싶어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관객의 입장에서 뽑아내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이미 언론에서 밝힌 바 있듯, 이 영화의 적지 않은 분량은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다고 했다. 첫 시퀀스라고 할 수 있는 공중 비행기 장면이 그런 것으로 보이는 데, 한마디로 장쾌했다. 마치 관객은 맹금류가 되어 두 대의 비행기를 鳥瞰하고 있는 듯했다. 배트맨의 주요 활동 무대인 고담시는 이번 영화에서 인질이 된다. 특정 인물이 아니라 도시 자체가 인질이 되는 것도 독특한데, 누군가가 그곳을 빠져나가려 하면 사람이 죽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니라 도시 구조물이 毁傷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특히 뉴욕의 여러 다리들이 폭발되는 듯한 모습이, 그리고 피츠버그의 유명 미식축구장이 연쇄폭발이라도 하는 듯 무너져내리는 장면에선 쾌감마저 느껴졌다.


볼거리에 대한 초점을 고배율로 높이면, 각 인물들의 원맨쇼와 같은 재주들과 그들이 타고 다니는 비클(vehicle), 유니크한 의상들, 특히 악역으로 나오는 베인의 철제 마스크는 그저 겉멋만이 아닌 아픔이 서린 오브제라서 비록 그로인해 발음이 다소 부정확하게 들린다 해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악인에게 가해지는 분노와 연민이 함께 드러났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들이 비교적 제한적이고 어둠을 동반하는 시간대 인지라, 대개가 원색보다는 검은 색과 은회색 주조였으며, 부유층으로 나오는 웨인의 거주지 또한 신비롭기까지 했다.

 


 

 

 

두 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았던 건, 굉음과 소음수준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테마 후크송이 아니라, 또 막바지 베인과 웨인의 20여분간의 생사를 가를 적대적 전투가 아니라 바로 이 영화가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며 모든 법은 사람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변방에 있던 秦나라가 중원 땅의 제후국을 모두 복속하고 통일 왕조를 이룬데는 상앙과 이사등이 제정한 강력한 법치때문이었다. 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국법을 어길시에는 엄격한 법적용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벌벌떨며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사회에선 진시황이 할 만한 것이라는 많지 않아보였고 손쉽게 전제정치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말하고 있다. 상앙과 이사 모두 자신이 만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비운의 삶을 마감했음을.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면서 초반 이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배트맨이 나타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마치 평온한 세상일 것 같지만, 하비덴트법을 유지해가며 그렇게 무자비한 세상에선 언젠가 풍선이 한쪽으로 짓눌려 펑하고 터질 것 같은, 불완전 균형감이 느껴졌다.


 

 

 

또 한 가지는 기존의 사회구도를 깨고 질서를 유린하고 내세우는 말들이 가진 자들의 것을 취하고 기득권자들을 모두 아래로 향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 허름한 옷을 입은 판사(그 역시도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가 나와 임의대로 양형을 정하고 재심은 커녕 피고인의 이야기도 제대로 듣지 않고 판결을 내리는 모습이 마치 중국 현대사 속에 등장하는 인민재판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설정을 만들어 두었는가? 누군가에 대한 복수심때문이라면 이럴 필요도 없었다. 소위 반란에 동참한 소수의 인원으로 그 많은 고담시의 시민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영화적 비약을 애교로 봐준다고 해도 마치 이자성군이 북경성으로 쳐들어와 북경시민을 볼모로 잡고 명나라 마지막 황제를 자결로 이르게 한 모습도 떠올랐다.


성공하지 못한 혁명을 쿠데타라고 한다면, 고담시를 둘러싼 이들 무리의 행동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만약 쿠데타라면 그들이 칼끝은 도대체 누굴향하고 있는 것일까? 가진 자의 것을 침해하고 못살 게 군다고 사회정의가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복수의 대상이 희미한 데도 그토록 무자비한 모습만으로 일관하다 허무하게 나가떨어지는 캐릭터들의 마지막도 쉽게 와 닿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겨냥하는 목표는 뚜렷했다. 원죄에 대한 몸부림, 살기 위한 저항의 끝, 그들에게 더 남은 것은 없어보였다. 사회규준의 통제로 신음하는, 가지지 못한 자로서의 꿈틀거림.

 

 

 

 

 


 

사실 이 영화는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대결 구도하에서 그려진다. 설정은 일견 복잡해보이지만 풀어 놓고 설명하는 방식은 단순했다. 군수산업을 영위하는 웨인 그룹이라는 재벌의 유산을 물려받은 남자, 부모의 연좌로 지옥같은 감옥 속에서 강해지지 않으면 죽어 나갈 수 밖에 없는 참혹한 현실에서 단련되어 진 또 다른 남자. 아날로그적으로 주먹으로 치고 받고 싸우는 모습만 보면 마치 격투기 선수의 대결같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슬픔이 진하게 배어나올 수 밖에 없는 구도다. 은둔자로 살아왔던 브루스 웨인, 회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지나 可恐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가 소유하고 있던 주식은 누군가의 농간에 의해 휴지조각이 된다. 막다른 상황에 몰리게 된 그가 움직이게 된 건, 어쩌면 시대가 그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역시도 무엇으로부터 "당하게" 된 이후 자각을 한 것 같은 모양새다.


이 영화의 기본 主潮는 서글픔이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그렇다. 배트맨도, 캣우먼도, 집사도, 신참 경찰도 그리고 악역인 베인과 결정적인 키맨 역시 모두 결손의 아픔을 담고 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열심히 두드려 패도 흥이 나질 않는다.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어도 모두가 이미 아린 상처를 부여잡고 통곡하기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가슴에 품은 묵직한 돌덩이나 토렴해 놓은 뜨거운 장국밥으로 묘사하고 싶다. 이런 구도를 깨버리는 갑작스런 마지막 반전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덧 160여 분의 장편의 음악회는 끝이 났다. 더 이상의 시리즈물은 없다고 했지만 배트맨의 친구 로빈의 정체가 뜻밖의 상황에서 밝혀지는 것에서 어쩌면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을 염두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또 다른 작품을 보고 싶은 설레발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 (2012)

The Dark Knight Rises 
9.7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톰 하디, 리암 니슨, 조셉 고든-레빗, 앤 해서웨이
정보
액션, 범죄 | 미국, 영국 | 165 분 | 2012-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