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 - 공시족의 로망, 추억속으로 회귀하다

효준선생 2012. 7. 7. 02:07

 

 

 

 

 

서른 여덟살 노총각 7급 공무원 한대희 주임의 넋두리로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는 시작한다. 자기 소개를 겸해 주인공 캐릭터의 특징이 나열되는데, 공시족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삶이 어째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본인은 나름 해피하게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왠지 쓸쓸해 보인다.


홍대가 속한 마포구, 유독 젊은 청춘의 열기가 들끓는 장소다. 이름도 없이 명멸해 간 수많은 밴드 중에 한 팀이 한 주임과 인연이 닿고, 약점을 잡힌 그들과의 공생은 복지부동에 익숙해져버린 어느 공무원의 삶을 살짝 비틀어 놓는다.


학창시절, 록음악과 이런 저런 팝뮤직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 드물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레코드 샵을 기웃거리거나 청계천 중고시장을 통해 하나 둘 씩 사 모은 LP판들. 턴테이블이나 제대로 돌아가는 지 모를 만큼 시간이 흘렀건만, 앨범 자킷에 시선이 꽂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며 사들인 그것들에게 추억은 각인된 바 있다. 오랜만에 꺼내든 아무개의 앨범을 통해 나오는 그 시절의 노래들. 왜 그렇게 이들 노래에 푹 빠졌던 것일까. 이 영화 역시 추억을 말하고 있다.


악기라고는 단 한번도 손에 만져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밴드부의 일원이라는 기회, 웬만하면 안한다고 할 텐데 무슨 마가 끼었는지 어렵사리 잡은 베이스 기타가 싫지만은 않다. 사실 베이스 기타는 모든 악기를 조율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있는 지 없는 지 들리지도 않는 악기지만, 대개 그 팀에서 친화력과 조정력이 있는 멤버들이 맡는 섹션이다. 그러니, 아직은 어려보이는 밴드 명 “삼삼은구”의 멤버들에겐 한 주임에게 맡긴 베이스 기타는 조율인 셈이다. 마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친 형이나 친정 오빠처럼.


이 영화는 상업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독립영화의 냄새가 많이 난다. 다소 부족해 보이는 밴드 멤버들의 연기력은 그 보다 나아 보이는 연주실력으로 커버하고, 적은 출연진 때문에 느껴지는 허전함 역시 이들이 선보인 노래와 연주로 커버를 한다. 영화를 보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때 달뜬 얼굴을 하고 있는 공무원 한 주임을 볼 수 있다. 연봉 3,500만원에 칼퇴근이 보장되는 이 시대 최고의 직업군을 가진 남자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열정은 악기를 연주할 때 사라진 모양새다. 이 영화는 밴드의 성공과 좌절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민원을 야기하며 소음을 연주하는 무명 밴드와 이를 단속하는 공무원 사이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오히려 한데 뭉쳐 뭔가를 만들어 낼때의 희열을 선사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영화 내용 중엔 은근히 부동산 정책이나 무료한 여가생활, 노총각 문제, 88만원 세대의 불안심리등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는 부족한 스토리텔링을 보충하는 보완재일 뿐이다. 영화 속 대사에도 언급되었든 이 시대는 환각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약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음악은 꽤나 훌륭한 환각제다. 영화를 보고 나니 얼마전 이사를 하면서 수십년간 모아왔던 LP판을 보관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모두 버린 사실이 마음이 아팠다. 그게 다 추억인데,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듣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나는 공무원이다 (2012)

Dangerously Excited 
8.6
감독
구자홍
출연
윤제문, 송하윤, 성준, 김희정, 서현정
정보
코미디, 드라마 | 한국 | 101 분 | 201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