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로스트 인 베이징 - 물욕과 본능사이에서 몸부림치다.

효준선생 2012. 7. 9. 00:13

 

 

 

 

자수성가해서 번듯한 맛사지샵을 운영하는 사장 린동, 번쩍거리는 금목걸이를 차고 벤츠를 굴리며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는 그의 유일한 고민은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도 나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그에게 하늘이 보내주었나 싶게 어느날 아이가 생긴다. 그리고 그 아이를 둘러싼 이야기들, 바로 영화 로스트 인 베이징이다.


황제가 존재하던 시절, 자리의 계승여부는 그 나라의 존속 여부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연유로 후사가 없는 황제들은 수없이 많은 여인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后니, 妃니, 嬪이니 하여 각종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 하나 낳아주기를 원했다. 귀족이나 양반들도 못지 않았다. 육욕의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사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 오로지 아들 하나 보기 위해 첩을 두거나 심지어 씨받이를 통해 원하던 바를 이루던 때가 있었다. 이 과정 속에서 여성의 입지는 딱 두 가지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찬 밥 신세가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하거나, 혹은 사랑이 없는 관계를 통해 오로지 몸만을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경우다.


개혁개방과 적극적인 대외무역 정책을 통해 어느덧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 된 중국, 수도 북경은 현재 뜨겁게 용융중이다. 그 어떤 재료를 집어 넣던 뭔가가 반드시 만들어지는 곳, 그리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의 몫은 분명히 챙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선부론에 입각하여 돈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은 빌딩 올리고 자기 사업하며 과거 양반 귀족이 그랬듯 밑의 사람을 부리고 살며, 늦게 출발한 사람은 그런 사람 밑에서 부지런히 쫒아가는 구조다.

 

 

 

 


영화 로스트 인 베이징은 바로 이 메가시티 북경에서 살고 있는 네 남녀의 엇갈린 탐욕과 갈등을 사회적 담론과 영화적 디테일을 잘 버무려 만들어 낸 비빔밥 같은 영화다. 원 제목인 苹果는 사과라는 의미이자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우선 이들의 직업이 의미하는 바를 보면 류핑궈는 시골 출신의 곱상한 외모의 발맛사지사다. 청소업체 용역으로 일하는 남편 안쿤은 정말 허름한 아파트에서 미래를 보고 돈을 모아가며 언젠가 성공할 날을 꿈꾸며 사는 소시민이다. 류핑궈가 일하는 발맛사지 업체의 사장은 린동은 말 그대로 졸부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과 그럭저럭 살고 있다. 부인은 별도의 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남편에 대해 말 못할 불만도 없지 않다.


이들의 관계가 순식간에 틀어진 건 술에 취해 실수를 한 류핑궈의 행동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린동의 행동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지점에서 린동의 범죄행위에 대해 단죄를 하냐 마냐의 관점이 아니라 이 때문에 임신이 된 류핑궈의 아이를 놓고 벌어지는 네 사람이 개별적 가치판단과 후속조치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류핑궈, 안쿤 부부는 상식외의 행동을 한다. 그들에게 던져진 거금앞에 갈등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수를 부리는 모습을 보이며, 그 이전까지 냉혈한처럼 보이던 린동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무기인 돈으로 父情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돈의 용처에 대해 린동은 정말 자본주의적 발상을 한다. 자신의 아내를 강간했으니 위자료조로 2만원을 요구하는 안쿤에게 나쁜 놈이라며 거절을 하던 그가 당신의 아이가 생겼다는 말에 오히려 10만원을 줄테니 아이를 낳아달라고 한다. 이런 발상은 돈 보다 중요한 자신의 유일한 흠결을 보상받았다는 심리로 보인다. 아이를 낳을 수 없음이 자신과 아내 둘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밝힌 바 없으나 일단 자신의 후사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그는 돈보다 더 가치있는 것에 미련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의 부하직원을 강제로 임신시켰다는 죄책감 대신 그저 자신의 후사가 생겼다며 보여주는 린동의 일련의 주책맞은 모습은 예전 황제나 귀족들의 모습과 진배가 없어 보였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가 감정에만 호소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랬다면 신파조로 흘렀을텐데, 혈액형을 감별하여 결과에 따라 모종의 선택을 하자고 결의한 린동과 안쿤, 그리고 린동의 아내과 안쿤의 새로운 관계 형성, 그동안 수세적 방어만 해왔던 핑궈가 선택한 마지막 한 수는 스릴러적 요소까지도 가미하고 있어 긴장감도 대단했다.


 

 

 

영화 중반, 북경의 모습이 아무런 대사나 설명없이 스쳐지나갔다. 민초들의 삶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 마천루가 솟아있는 북경의 모습들. 영화의 내용이 마치 그 소돔과 고모라 같은 북경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제 자식임을 확인하고도 큰 돈 앞에서 음모를 꾀하는 안쿤과 버려질 운명임을 알면서도 젖을 물리기 위해 자신을 강간한 남자의 집에서 유모처럼 일하는 핑궈의 모습이 마치 조금더 참으면 골인점이니 열심히 달려보자라는 마라톤 선수의 라스트 스피치처럼 보인다.

 

핑궈는 마지막 장면에서 달걀프라이와 우유 한 컵을 테이블위에 놓고 그 집을 빠져나온다. 의미심장하다. 남녀의 상징으로 보였다. 어쩌면 서로를 대하지 않고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 이 두 커플에게 인연이 있다면 그건 分散의 緣인 셈이다. 최후에 웃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마다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타이틀롤이 아니겠나 싶다.


전작 영화<관음산>에서부터 여성 감독 리위(李玉)과 손잡고 힘든 연기들을 펼쳐보인 대륙의 최고 미인 판빙빙의 연기는 얼굴만으로 승부한다는 비아냥에 익숙한 미녀 배우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한계를 깨려는 몸부림처럼 보여졌다.   

 

중국 영화가 한국에서 소개되면 대개 무협영화들인데 이처럼 리얼리티한 현대극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접하면서 느낀 건, 그들도 우리처럼 땅바닥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는 걸 인식시켜주고 있구나 하는 점이다. 중국사람들은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모쪼록 다양한 장르의 중국영화를 한국의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로스트 인 베이징 (2012)

Lost in Beijing 
9.5
감독
이옥
출연
판빙빙, 양가휘, 동대위, 금연령, 동립범
정보
드라마 | 중국 | 113 분 | 201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