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 - 짧지만 강렬했던 아버지의 그림자

효준선생 2012. 7. 5. 00:16

 

 

 

 

 

남자는 매우 아프다. 피를 한 바가지나 쏟아내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그런데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영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의 시작은 그 남자가 自酌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술을 먹다 그대로 쓰러지는 장면만 보면 사실 무섭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남자, 여전히 술을 마신다. 남자는 외롭다. 이혼한 아내와의 사이에 두 남매가 있지만 본인은 늙은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이 남자 이혼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걸까


술의 위력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면 공감할 것이다. 기분 좋아서 한 잔, 기분 나빠서 한 잔, 비가 와서 한 잔, 눈이 와서 한 잔, 그렇게 술 마실 핑계를 대다보니 간장은 버틸 재간이 없고, 이 남자처럼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남자가 술을 마시는 계기를 들어보니, 비단 이 남자만의 개인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이 남자의 과거로 들어가 봐야겠다. 다이애나 비가 사고로 죽은 즈음, 이 남자는 동남아의 어느 독재국가의 2인자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따냈다. 그걸 들고 방송국을 찾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차가운 냉소뿐이었다. 그렇다 가방 끈도 길지 않은 그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사진이었다. 남들은 잘 하지 않는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르포 사진을 찍었던 남자의 과거. 인간의 가장 참혹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만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에겐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가 생긴 모양이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한 모금씩하던 술은 이제 말술이 되고 의사는 알코올의존증이라는 병명을 붙여준다.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리며 아이들의 양육까지 맡은 아내, 이미 이혼한 남편이지만 자꾸 아프다고 하는 소리에 마음이 짠하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어른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지만, 술은 남자에겐 기억을 지우고 싶은 일종의 약물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알콜 중독이 아니라 알콜 의존증이란 병명이 이채롭다. 알콜에 의존해야만 자신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어떤 트라우마를 잠시나마 지울 수 있다는 점, 통원치료만 잘 받으면 나을 수도 있단 점에서 그나마 희망적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마치 기면증에라도 걸린 듯 픽픽 쓰러지는 남자. 그제서야 상황을 알 수 있게 된다.

아버지가 술꾼인 경우 그 아들도 역시 술꾼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어려서 가정폭력을 목도하고는 자신은 결코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맹세했건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자신의 핏속 DNA엔 알콜이 각인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배경은 단출하다. 주인공의 집, 그리고 병원이다. 그 안에서 뱅뱅 돌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는 않다. 특히 환자와 의사 환자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들끼리의 알력과 이해의 장이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 가며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엔 카레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남자에겐 카레를 먹어보는 게 소원인 것처럼 자주 등장한다. 위가 부어있다는 이유로 유독 남자에게만 카레를 주지 않는 병원 처사가 과장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결론을 보고 나니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 싶었다. 오히려 남자가 먹은 카레밥이 그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갈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쓸쓸해보였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실화를 모티프로 해서 만든 원작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영화 중간에 일러스트레이션이 몇 장 스크린을 꽉 채우는데 바로 이 영화의 실제 여주인공인 만화가가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과거의 잊고 싶은 기억을 제거하기 위해 술의 힘을 빌려온 남자, 그리고 그를 묵묵히 지켜봐왔던 아내, 어쩌면 함께 할 날이 많아 보이지 않아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라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생사를 놓고 울고 짜는 심각한 영화가 아니라 시종 웃음과 잔잔한 드라마로 점철된 영화라 큰 부담없이 볼 수 있다. 아버지 부재 시대, 한 번쯤 아버지의 존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다. 딸로 나온 꼬마 여자아이의 앙증맞은 연기도 인상적이다.

 

 

 

 

 

 

 

 

 


술이 깨면 집에가자 (2012)

Wandering Home 
8.5
감독
히가시 요이치
출연
아사노 타다노부, 나가사쿠 히로미, 이치카와 미카코, 리즈 고, 타카다 쇼코
정보
드라마 | 일본 | 118 분 | 201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