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폭풍의 언덕 - 네 사랑의 연분은 여기 없는 모양이구나

효준선생 2012. 6. 22. 01:33

 

 

 

 

 

영국 여류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이 영상으로 옮겨졌다. 영국 영화다운 풍미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영화는 이루어 질 수 없었던 사랑을 매개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어졌다 끊어지는 사랑의 인연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흑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의 갈구로 시작된다. 창밖엔 바람이 불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세 찬 바람을 피해 본능적으로 창 안으로 들어오기라도 할 듯 뻗어 있었다.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만남을 보자. 캐시의 아버지는 어느날 거리에 버려진 검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옷이 벗겨진 채 샤워를 하는 모습을 빼꼼 바라보던 어린 캐시의 눈에 검은 피부의 아이는 어떤 존재였을까 비록 어리지만 둘은 이내 가까운 사이가 되고 둘의 관계를 질시하던 오빠 힌들리는 못마땅해 한다.


이 소설이 쓰여진 1800년 대 중반, 영국은 한창 제국주의의 면모를 세상에 보이며 강대국의 입김을 행사하던 때였다. 그런데 소설에 그 등장이 갑작스럽다고 할 수 있는 유색인종의 등장이라는 건, 식민지배 시절의 사회적 혼란을 개인적 감정에 삽입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려는 시도라고 보인다. 다시 말해 히스클리프는 영국이 지배하거나 지배하기 위해 노리고 있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비록 그 대상이 비유럽이라고 해도 우윳빛 피부를 가진 그들의 눈에 동유럽이나 남유럽 사람들의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다 유색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다. 해서 등장한 것들이 집시나 스페인 계열의 고아라는 설정이다. 어찌되었든 영화 속 히스클리프는 미국 드라마 뿌리에 나올 정도의 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한 화면에도 넣고 조화를 맞추기엔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하얗다 못해 백반증에라도 걸린 듯한 피부를 지닌 캐시는 영국인 자신들의 이미지였다. 그녀는 때묻지 않은 순결함을 상징한다. 도회지에도 나가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시골 소녀의 이미지, 그런 둘의 만남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힌들리 만은 아닐 듯 싶었다.


사랑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금새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고아출신의 근본도 모르는 유색인종이 눈처럼 새하얀 캐시와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집을 떠난 히스클리프의 생존무기는 부자가 되는 것이고 성인이 되고 남의 아내가 된 캐시 앞에 다시 나타난 히스클리프에게 캐시는 또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일까 유부녀로 신세가 바뀐 캐시의 선택은 결혼 전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또 다른 눈들은 그녀를 곱게 보려 하지 않았다.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시종일관 그녀의 곁을 맴도는 히스클리프의 모습은 주변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더 이상 대영제국을 무서워하지 않는 유색인종의 나라처럼.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죽는 날은 같았으면 한다고 세상의 많은 연인들은 속삭인다. 그러나 현대의학이 발달한 지금도 그런 오싹한 소원은 이루기 힘든 마당에 당시엔 인명의 끝은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다. 사랑을 했던 사람과 지금 살고 있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을 하면 그 명은 결코 길게 갈 수 없는 모양이다.


영화의 엔딩 부분에 와서 이미 죽은 캐시의 시신을 부여잡고 마치 살아있는 연인에게 그러하듯 애무를 퍼붓는 히스클리프의 행위를 보면, 사랑의 절정은 아직 그들을 관통하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저토록 한 사람에 대해 절절한 연민과 애정을 갖고 살았을까? 전과 달리 가진 것도 많아졌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유도 많은데, 하늘이 내려준 태생적인 핸디캡을 따지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남겨놓은 대상을 향한 경건한 헌사처럼 보여졌다. 시신에 염을 하고 수의를 입히듯, 자신의 몸을 내던지던 히스클리프.


영국 요크셔 지방의 세찬 바람과 마치 화산재처럼 검게 덮인 언덕위에 덩그러니 놓인 집 한 채, 그리고 寡少한 대사와 그 흔한 음향효과 하나 없이 오로지 배우들과 자연의 소리만으로 촬영해낸 무척이나 인디스러운 영화.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초근접촬영과 유유자적인 스토리라인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이보다 더 영국스러운 영화를 구경하려면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지켜 볼만하다.

 

 

 

 

 

 

 

 

 


폭풍의 언덕 (2012)

Wuthering Heights 
7.2
감독
안드리아 아놀드
출연
카야 스코델라리오, 제임스 호손, 스티브 에베츠, 올리버 밀번, 니콜라 벌리
정보
로맨스/멜로 | 영국 | 129 분 | 2012-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