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두 개의 문 - 누가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나

효준선생 2012. 6. 19. 00:09

 

 

 

 

쥐도 코너에 물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처럼, 제 아무리 나약한 상대라 해도 퇴로는 만들어주라고 했다. 그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싸움이론이다. 상대를 넉다운시켜 자신의 勢를 과시하는 건, 그야말로 미련한 짓이다. 서로가 만신창이가 되면 무엇을 하겠나. 지켜보는 관중들이야 유혈이 낭자한 게임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을테지만, 링 위에 올라간 두 선수의 내일은 고통만이 남겨진 충격이다.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졸지 않고 교과서에만 충실했다면 유기용제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물을 붓는다고 그 불길이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집에서 기름요리를 하다 실수로 불이 난 경우 급한 마음에 물을 부었다가는 그 집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음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신나등 유기용제가 가득한 밀폐공간에 불꽃이 일었다고 물을 쏟아 붓는, 심지어 옆에서 소용없다고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물대포를 쏘아 부으라는 명령을 듣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진다.


영화 두 개의 문은 2009년 1월 20일 한 겨울 새벽녘 자행된 용산 남일당 건물 철거현장에서 발생한 비극을 주로 사건의 담당변호인단과 현장진압에 투입되었던 경찰 특공대 팀장과 대원의 법정 진술 녹취록을 중심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그동안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했던 참사의 속내가 비교적 중립적으로 이야기되고 있음에 좀 놀라웠다. 그건 그동안 들어왔던 이야기들이 단편적으로 일방의 감상적인 주장과 그저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에 불과했기 때문인데, 어떻게 구했는지, 마치 당일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시간대에 맞춰 영상으로 옮겨지고 거기에 진술이 덧입혀지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음에 놀라웠던 것이다.


冒頭에서 말한 것처럼 사건이 발화된 시점은 당일이 아닌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산 재개발과 관련해 인근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업권을 요구하며 시작된 농성이 경찰말대로 과격해지기 시작했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로 국민적 저항에 대해 홍역을 앓았던 이 정권은 무엇이든지 초기 진압이 최우선이라는 사고를 하지 않았나 싶었다. 또한 그 즈음 경찰청장으로 내정되어 있던 자는 용산을 잘 마무리해서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공명심에 사로잡혀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영화 말미에 등장한다. 그게 바로 용산참사의 핵심이다. 누군가 상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든 그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보다는 상대에게 눌림을 당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다소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수세적 가정 같은 걸 하기 보다는 일단 밀어붙이자는 강성 작전이 하달되었을 가능성은 크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낀 사람들은 누구인가?


시위현장에 가보면 주장을 하기 위해, 모처에 진입을 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막고 선 사람들은 당사자가 아니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동생이다. 그들에게 모진 소리를 퍼붓고, 혹여 돌멩이라도 던지면 속이 풀릴지 모르지만 이해 당사자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뒷짐이나 지고 “저것들 안 막고 모하나”는 막연한 명령만 내릴 뿐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남일당 건물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농성인원과 경찰특공대원을 보여주고 있다. 화염병이 날고, 물대포와 이런 저런 시위방호 물품이 보였다.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사건 당시의 정황에 대해 누구의 잘못인지에 대해 채증장면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살의를 느낀다면 그 사람 역시 그런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현장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서당이 아니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곳이다. 한 사람이 나서서 이건 개죽음입니다. 라고 외칠 틈도 없다. 한 편은 먹고 살기 위해, 다른 한 편은 그렇게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했고 결국은 애꿎은 희생자가 생겼다.


두 평 남짓한 엉성한 망루 안에서 불꽃이 일고 점점 불길이 커지는 데도 그 위로 물대포가 쏟아졌다. 이미 지난 일인데도 가슴이 답답했다. 그건 “다 죽어라” 라는 분노의 물길로 보였다. 결코 화재진압을 위함이 아니었다. 일 년 전 방화로 숭례문이 타는 순간에 물로는 진화할 수 없는 화재임에도 물을 쏟아 붓느라 영영 복구 불가한 상태가 된 경험을 그들은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서둘렀을까? 대체 누가 그런 작전을 지시했을까 몸통은 쏙 빠지고 깃털, 아니 깃털에 붙은 먼지들만 나서서 자신없는 목소리로 진술하는 걸 보니, 어쩌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게 용산이 주는 슬픈 교훈이다.  영화 제목 두 개의 문은 건물 꼭대기에 만들어진 망루의 입구와 출구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보이는 두 개의 문은 모두 닫혀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문을 열고 당당하게 나오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외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제발 우리의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용산 남일당 자리는 얼마전까지도 불에 타다 남은 폐 건물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 흘러간 시간동안 대화가 타협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두 개의 문 (2012)

Two Doors 
9.2
감독
김일란, 홍지유
출연
권영국, 김형태, 류주형, 박진, 박성훈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101 분 | 201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