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다른 나라에서 - 불란서 아지매, 전북 부안에 떴다

효준선생 2012. 5. 31. 00:40

 

 

 

 

 

몽마르트 언덕에서 와인을 홀짝이는 모습이 제법일 듯 한 불란서 아지매가 왜 전라북도 부안땅 개펄이 보이는 펜션에서 어슬렁거리며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일까? 자기 말로는 좋아 죽겠다는 표정인데, 한국인들 사이에서 말은 안통하고 남정네들은 숫컷 본능을 발휘하며 스킨쉽을 운운하는 거 보니, 필경 무슨 사연이 있을 법하다. 한번 들어볼까나?


홍상수 감독의 열 세 번째 작품 영화 다른 나라에서가 첫선을 보였다. 평균적으로 그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요, 즐거움이다. 비슷한 정서를 구경할 수 있고, 늘 비슷한 환경에서 영화를 볼 수 있으니, 그 루틴함이 약간의 긴장감도 주면서 편안한 느낌이다. 물론 이번 영화에서도 큰 테두리안에선 변화가 없지만 외국인 배우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대사의 절반이 중학교를 중간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이라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교과서에 나오는 영어로 되어 있다는 건 의외였다. 물론 그것도 신선해서 좋다.


그 외국인 여배우란 작년 아주 인상 깊게 본 코파카바나의 여주인공 이자벨 위페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그 여배우가 대작도 아닌, 인위적 설정극에 가까운 한국영화에 출연한 이유는 외국에 널리 알려진 홍상수의 이름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캐스팅 비화를 추측해본다.


그런데 그녀가 연기해낸 캐릭터는 한 가지가 아니다. 무려 세 가지로 표변해가며 이런 저런 스타일의 프랑스 여성을 연기하는데, 외모야 그대로지만 별로 지치지도 않고 반복, 또 반복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의 최고의 화두는 반복이다. 부안 앞바다가 보이는 펜션 안, 그리고 그 앞길이 이 영화의 배경의 전부다. 거길 오고 가고 또 왔다갔다 하면서 매우 한정된 인원의 한국 배우들, 유준상, 정유미, 문소리, 윤여정, 권해효 그리고 도올 선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심지어 1편에서 했던 대사를 재차 반복한다.


반복이라는 화두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해진 일터로 나가고 세끼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잔다. 일상에서 조금 벗어난 일엔 버거워 하거나 두려워 하거나 신기해한다. 나름대로 그걸 불행과 행복이라 지칭하며 세월과 시간을 보내고 우린 그걸 비슷하게 인생이라 했다. 이 영화에선 자꾸 뭔가를 찾거나 잃어버린다. 우산을, 휴대폰을, 만년필을, 등대를 그리고 자아를...


내 앞에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 자꾸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분명 그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기억을 못하는 것 뿐이다. 도올 선생과 안느가 마치 선문답을 주고 받듯 하는 어설픈 대사속에서 답이 얼추 나온 셈이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나요?”


모른다. 라고 쉽게 얘기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모르는 사람과는 함께 잘도 있으면서 모르는 나와는 잠시도 함께 있으려고 하지 않는 인간.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갈구하고 넘치는 것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프랑스 여자 안느는 동양인의 시각에서 보면 멋진 여자다. 그런데도 남편과 불화를 겪거나 이혼을 했다. 그리고 한국 남자를 만났다. 그녀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이 영화의 시작은 펜션 여주인 정유미의 소설속 이야기로 전개된다. 액자구조인 듯 싶지만 정유미 역시 그 소설에 등장한다. 그리고 옴니버스 스타일이지만 예사롭지 않다. 주인공의 역할이 바뀌는 건 많이 보았지만 주변인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章節에서 그녀를 낯선 여자로, 혹은 다른 여자로 대하는 설정이 매우 이채롭다.


결론적으로 “홍삘”은 여전했다. 뒤로 갈수록 반복되는 설정인지라 웃음의 강도는 옅어졌지만 하고픈 이야기는 다 나온 듯 싶었다. 과연 우리 마음의 등대는 어디쯤 있을까? 그리고 안느가 영화 중반에 숨겨 놓은 우산을 엔딩에서 꺼내드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나저나 다음 작품에선 외계인과의 심오한 철학이야기를 나누는 설정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다소 긴장된다. 

 

 

 

 

 

 

 

 


다른 나라에서 (2012)

In Another Country 
8
감독
홍상수
출연
이자벨 위페르, 유준상, 정유미, 윤여정, 문성근
정보
드라마 | 한국 | 88 분 | 2012-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