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블루 발렌타인 - 사랑했던 그때를 지워내야 하는 지금

효준선생 2012. 5. 30. 00:10

 

 

 

 

 

올해 본 미국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남녀 배우를 꼽으라면 라이언 고슬링과 미셀 윌리엄스다. 각각 영화 드라이브, 킹메이커와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을 통해 기억에 각인된, 그야말로 핫한 배우 둘이 그들만의 연기를 선보인 영화 블루 발렌타인은 쌉쌀한 자몽의 맛이 났다.


이 영화는 우선 보기 드문 편집을 구사한다. 현재의 모습을 통해 부부의 오늘을 보여주더니 갑자기 몇 년은 젊어진 남자의 모습과 그에 걸맞는 여자를 보여주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 할테니 잘 대비해서 보시라는 언질을 주고 있다. 그걸 놓치면서 보면 마치 두 커플의 이야기인가 싶어 혼동스러워 질 수도 있을 만큼 특히 두 배우의 시간차 분장과 스타일은 딴판이었다. 겨우 6년인데.


부부 생활 6년 사이 이들에겐 어린 딸이 생겼고 남자는 머리 숱이 희소해졌고 안경을 썼다. 여자는 살집이 제법 붙었고 걸음걸이등이 정말 아줌마 톤이었다. 이들 배우들은 젊은 연애시절을 촬영하고 나서 한 달간 휴지기를 갖고 마인드 콘트롤과 실제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다음 촬영을 준비했다고 하니 저절로 자연스런 부부연기가 도출된 듯 하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선 거쳐야 할 관문들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이삿짐 센터 직원으로 일하는 남자와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며 미래에 의사를 꿈꾸는 여대생과의 만남은 제 아무리 열린 마음을 가진 누구라도 제 자식이라면 쉽게 허락할 결혼의 조건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나름 진지한, 나름 깨소금이 쏟아질 법한 애정행각에 세월은, 주변환경들은 눈감아 준 셈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이 평생 영속한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졌을리 만무하다. 연애 시절의 영상은 갈수록 행복한 표정이라면 현재의 영상은 갈수록 어두운 표정이었다. 영화의 초점은 그토록 사랑했던 커플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맞춰졌는데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남자의 자격지심에서 시작한 가정 폭력같은 건 결코 없었다. 한마디로 이야기가 안통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약간의 의처증 증세가 전부였다. 여자는 수세적으로 몇 마디라도 하려면 남자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이죽거릴뿐이었다. 화가 아무리 나는 상황이 되도 절대로 주먹을 들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모텔신에서 부부는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잘 해보려고 아이를 장인에게 맡기고 모텔로 간다. 이름하여 퓨처룸, 그러나 그곳에서 역시 부부는 갈등을 풀기 보다는 더욱 심화시키는 행위를 하며 그 곳은 미래의 부부의 운명을 암시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로맨틱하다.” 영화 속 남자의 행동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힘든 이삿짐 센터일을 그만두고 간간히 페인트 칠을 해주며 소일을 하는 남자, 그는 그래야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며 만족해 한다. 그러나 여자의 눈엔 그런게 못마땅해 보였다.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돌려가며 다른 일을 해보라 하지만 남자는 그걸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라 일방적으로 여길뿐이다. 애초부터 소통이 안되는 여러 상황이 겹치며 부부의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


집에 키우던 개가 죽고 그걸 묻어 주고 눈물을 흘리는 남자, 이삿짐 센터 일을 하면서도 마치 포장이사를 해주듯 꼼꼼하게 챙겨주던 남자의 본연의 모습은 거꾸로 여성의 섬세함으로 비춰졌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도 그런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반대로 자신의 미래를 결혼과 맞바꾸었다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결혼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닌 실제였다. 그런 사고의 충돌은 부부관계를 통해 해결되는 그런 수준은 아닌 듯 싶었다.


연애 시절의 커플이 보여준 닭살돋는 장면도, 서로가 사랑하는 지 가슴으로는 이해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이들 부분의 달콤하고도 위태로워 보이는 아슬아슬함은 이 영화의 매력이다. 특히 원거리 촬영을 감행함으로써 배우들의 연기가 실제처럼 보이는 장면, 장면들은 참 보기 좋았다. 카메라가 꺼지고도 그 연결되는 감정이 영화 속에서 읽혀질 정도였다. 임신사실을 고백하기 위해 남자를 찾은 여자, 그리고 남자가 보여준 애드립에 가까운 위험한 장면들은 혹시 라이언 고슬링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도 사랑하는 남편, 히스 레저를 먼저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화를 찍은 미셀 윌리엄스의 마음이 영화 중간에 간간히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다. 이 두 배우의 연기는 이렇게 농익어 우러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폭죽은 희망과 축원의 상징이지만, 그 폭죽 사이로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정말로 쓸쓸해 보였다. 서로 사랑함을 알지만 헤어짐을 선택하려고 하는 이들의 과오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헤어진다고 해서 그 선택이 과연 잘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했던 그때, 그리고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금을 절절하게 표현해낸 수작이다.     

 

 

 

 

 

 

 

 

 


블루 발렌타인 (2012)

Blue Vale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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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렉 시안프랜스
출연
라이언 고슬링, 미셸 윌리엄스, 마이크 보겔, 존 도먼, 벤 솅크먼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14 분 | 2012-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