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퍼스트 그레이더 - 이 할아버지를 외면하지 마세요

효준선생 2012. 5. 22. 12:34

 

 

 

 

 

케냐의 어느 시골마을에 학교가 열렸다. 인근에 사는 코흘리개 아이들은 배울 수 있다는 희소식에 들떠있고 그 와중에 여든 넷의 노인이 학교로 찾아온다. 그 또한 글자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전하지만 학교는 여력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은 할아버지는 중고시장에서 교복을 사 입고 연필과 노트를 마련해 다시 한번 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학교장인 제인은 그의 노력이 가상해 그의 입학을 전격적으로 허락한다. 기네스 북에도 올라있는 최고령 초등학생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영화 퍼스트 그레이더는 영국의 식민지배와 침략에 맞서 싸웠던 어느 늙은 독립투사의 회고록 같은 이야기다. 거기에 현실적 교육문제를 교차시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휴머니티를 선사하고 있다. 한때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싸웠던 그들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부족간의 반목이 있었다는 이유로 내쳐진 그들, 이제 그들마저 세상을 뜨면 아무도 그들을 기억할 만한 사람은 없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글을 배우고 싶어했던 단 한가지 이유가 엔딩에 나오는데, 그 또한 대한민국의 역사와 맞물려 콧등이 시큼해지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할아버지는 수시로 말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아이들의 교육이 중요한 것은 그 자체가 미래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어렸을땐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기에 오로지 몸뚱아리 하나로 외세에 맞서 싸우다 늙고 병든 몸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학교가 자리한 곳은 비록 외세의 침략이나 전쟁은 없지만 여전히 척박한 곳이다. 단 하나의 교실안에서 콩나물 시루같은 교육환경, 마음에 내키지 않은 선생을 머나먼 곳으로 내치는 후진적 행정, 그러나 그곳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엘리트 계층을 상징하는 제인 선생 역시 그저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을 보고는 상부의 질책을 감수하면서까지 보조 교사로 임명하는 것을 보니, 참교육의 본질은 학문전수에만 있음이 아님을 알게 된다.


“키마니 낭아 마루게” 길고도 어려운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는 실존 인물이다. 2009년 타계할 때까지 그의 행적이 외국에까지 알려졌다고 하는데, 엔딩 타이틀에 그의 존영이 비춰진다. 전쟁통에 부인과 아이를 잃고 자신은 청력과 발가락을 잃는 고문을 당했다. 할아버지의 삶은 정말 보잘것 없었다. 만약 그에게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마저 빼앗아 버린다면 참 고약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배움은 끝이 있을 수 없다. 단지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어져 빨리 습득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지만 좀 천천히 배우면 어떠리.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독립 운동을 한 투사들은 한데로 밀려나고 정권 유지를 위해 왜곡된 이데올로기 투쟁노선이 마치 애국인 것처럼 분칠된 세상의 우리에게 이 영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프리카의 변방국가의 역사까지 이해하고 영화를 볼 필요는 없지만 군사력만 믿고 남의 나라에 들어와 분탕질을 서슴지 않았던 서구 열강의 모습에서 떠오르는 장면도 있고 단일민족이라서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사는 부족간의 이질감을 이해해야 하는 것도 이 영화가 주는 신선함이다.


할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없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처럼 사진속의 투사들의 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다. 다시 다른 나라에 복속되어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배우는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들은 어린아이들 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스승의 날이 멀지 않았다. 마루게 할아버지에게, 제인 선생님에게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미친다.

 

 

 

 

 

 

 

 

 


퍼스트 그레이더 (2012)

The First Grader 
9.4
감독
저스틴 채드윅
출연
나오미 해리스, 올리버 리톤도, 토니 크고로게, 투미쇼 마샤, 존 시비-오쿠무
정보
드라마 | 영국, 미국, 케냐 | 103 분 | 201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