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돈의 맛 - 니들은 절대 안돼, 나한테...

효준선생 2012. 5. 20. 00:51

 

 

 

 

 

영화 돈의 맛을 보기 전, 2년 전 요맘때 본 영화 하녀의 리뷰를 꺼내 보았다. 당시엔 리뷰 제목에 강추라는 말머리까지 달았다.  영화 하녀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하녀였고 아이러니하게 그때 살아남은 자들이 영화 돈의 맛의 주인공들로 등장한다.


전작의 내용을 살려내서 지금의 영화 속에 접붙이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 속편이 아님에도 그런 시도를 해낸 것은 제 작품에 대한 오마주라고 하기에 위험부담도 없을리 없고 혹여 그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겐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할테니 굳이 그럴 것 까지는 없는데, 그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영화 돈의 맛의 관찰자는 백금옥 여사(윤여정 분)의 딸인 윤나미(김효진 분)다. 事端의 始發은 그녀가 아니지만 그녀의 시선은 마치 감독의 그것을 대신하여 개입하고 있다. 돈을 위해 돈 많은 집 딸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고 평생 그것을 모욕이라며 혼자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았던 윤회장(백윤식 분),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호위호식하고 남편과 아들을 앞세워 구중궁궐같은 호화저택속에서 파티복 같은 원피스를 휘날리는 백여사, 누굴 닮아서인지 세상을 등치는 수완을 자랑이라고 뻐기는 아들까지 과연 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서로를 의심하거나 경계한다. 물론 의견의 일치도 있다. 검사, 판사, 경찰, 기자, 교수 나부랭이들에게 뇌물을 먹이거나 이권에 개입하거나 모질게도 인수합병을 해서 자산을 늘려가는 행위들.


회장이라는 직함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에서 번듯한 회사 사무실 한번 등장하지 않는다. 검은 색 주조의 대 저택이 거의 유일한 배경이다. 사실 이 영화는 이 저택이 주는 미쟝센이 묘한 쾌감과 질식감을 준다. 방문을 열면 남녀상열지사가 있고 방문을 닫고 들어 앉아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런데도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이들은 뭐가 좋은 지 거들먹거리거나 아랫 것을 상대로 희롱을 일삼기 일쑤다.


동물도 제 가족은 잡아먹지 않는다는데 이들 가족은 동물만도 못한 것일까? 그런 장면도 들어 있다. 제 어미와 딸이 한 남자에게 흘레붙는 관계, 그것도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 30년전 쯤 집안의 하녀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목도했다고 하는 이 집 딸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군다. 그러나 관객이 좀더 친밀감을 갖는 캐릭터는 이 집의 집사역할을 하는 주영작(김강우 분)이다. 입사 10년차, 흔해 빠진 실장이라는 직함 하나지만 그가 풀어내는 이 집안의 꼬인 실타래는 만만치 않다. 간혹 그가 더 엉켜놓기도 한다. 그가 집사로 만족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욕의 경계선에서 그는 너무 순진했거나 너무 무신경했다. 그가 안주인과 관계 후 욕심을 부렸다면 계열사 사장 자리 정도는 꿰찰 수도 있었음에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더 큰 야욕도 보이지 않았다. 재벌 집 입장에서는 푼돈에 불과한 돈 뭉치 몇 개를 꿍쳐놓고 그걸 보면서 만족하는 그의 모습은 그러니까 넌 월급쟁이일 뿐이다라고 일갈하는 왕비서의 말이 맞는 셈이다. 


혹자는 이 영화가 하녀 2라고까지 했다. 윤회장이 눈독을 들인 건 아내와의 결혼생활이나 그동안 모아놓은 금은보화도 아니고 다 장성한 자식들도 아니다. 회장이라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일개 필리핀에서 온, 말 그대로 하녀(마우이 테일러 분)와의 관계에서 그는 사는 보람이나 즐거움을 느낀 듯 싶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필리핀 하녀의 비중은 상당히 많았다. 윤회장과의 밀회, 아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등.


가진 자들은 어느 선까지 이르러도 만족할 수 없는 대뇌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부자라는 소리도 듣고, 한번 어느 정도에 이르면 그 행위를 멈출 수 없게 된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아들(온주완 분)로 대변되는 재벌 2세, 각종 인허가 비리로 감옥까지 간 신세지만 결코 후회나, 반성따윈 찾을 수 없다. 든든한 빽이 있기에, 절대로 굴복하려 들지 않는다.


부자들에게 가장 큰 힘은 가지고 있는 돈이 아니다. 바로 정보력이다. 백여사가 남편과 하녀사이를 눈치 챈 것도 CCTV덕분이고, 주영작을 이용해 수시로 정보를 얻어낸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정보가 없다면 결코 부를 이루거나 껄끄러운 상대를 제압할 힘은 없다.


이 영화의 초반이 마치 진득한 스릴러물처럼 느껴진 이유는 각각의 캐릭터들 간의 밀고 당기는 힘의 팽팽함 때문이었다. 반대로 후반부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여겨진 이유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필리핀 하녀에게로 간 윤회장의, 이해는 가지만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정도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인해 그 팽팽하던 긴장의 끈이 풀렸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그 즈음에 치고 끊었어야 했다. 긴 꼬리처럼 이어지는 엔딩부분까지의 이야기는 전개는 蛇足같았다.  의미없는 엔딩 장면의 황당한 컷은 동남아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사죄를 하는 독백처럼 여겨졌다. 그때까지 사건을 움켜쥐고 있던 주영작과 농밀한 관찰자인 윤나미를 진작에 해제시키지 못한 실수가 러닝타임을 그렇게 늘려놓게 된 사유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이의 소감을 보니 대략 가진 자들을 향한 비꼼이 여전하다고 했다. 아마 영화 속에서 영화로 등장하는 영화 하녀의 몇 장면 때문에 연상작용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다르게 생각을 해보면 이번 영화는 그렇게 비꼬았는데도 가진 자들은 그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같은 아랫 것들(?)은 결코 상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재차 확인했을 뿐이다. 주영작이 어떤 이유로 아들을 패려고 차에게 끄집어내는 순간 모두 그런 생각을 했을 듯 하다. 가지지 못한 자를 대표하는 주영작이 아들에게 주먹을 날리겠지, 그럼 코피라도 쏟을테고 보는 우린 카타르시스라도 느끼겠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아들의 주먹이 주영작에게 날아들며 이런 말을 한다. “당신들은 절대 안돼요, 나한테”... 아마도 감독은 가진자를 비롯한 여러 複數의 그들(?)이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건 다음 작품에서도 이어질 태세로 읽혔다. 

 

 

 

 

 

 

 

 


돈의 맛 (2012)

The Taste Of Money 
7.4
감독
임상수
출연
김강우, 백윤식, 윤여정, 김효진, 마우이 테일러
정보
드라마 | 한국 | 115 분 | 201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