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 이별을 준비하는 그대들에게

효준선생 2012. 5. 16. 00:20

 

 

 

 

 

이성이 마음에 들어 그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단언하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그 콩깍지가 벗겨질까? 다들 자신의 콩깍지는 철갑을 두른 듯하여 오래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영속적이지 않음을 알게 되는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느새 사랑이 정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외국에서 사랑을 시작하는 건, 좀 위험하다. 주변에 그를 제외하면 만나는 사람이 최소화 되는 조건하에서라면 그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면 그 달콤하고 향기로웠던 연애시절 이야기가 마치 만화책 부록처럼 휘리릭 지나가게 만들어 버리고 이내 삶의 무게 지쳐 투정 쯤 부려도 되는 시니컬한 아줌마 필의 여자와 그런 여자를 아내로 둔 것에 힘겨워 하는 어느 남자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견 멋지다. 스튜디오 스타일의 집 구조와 일류 일식 요리사 뺨치게 만들어 낸 한끼 식사,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의 나신, 그런 집과 요리와 아내를 가진 남자에게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은데 사람 사는 게 겉보기와는 다른 모양이다. 입만 벌리면 원칙과 예절을 따지고 자기가 하고픈 말에 상대방의 기분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여자의 심정은 이렇다. 난, 내가 하고픈 말은 다하고 살아야겠다. 그런데 그 말을 들어줄 남편이 있고 그래서 남편에게 그 말을 한다. 그게 진리요, 원칙이요, 예의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다르다. 일단 귀가 아프고 듣지 않아도 되는 말까지 다 들어야 하는 것은 곤욕이다. 또 하나 왜 자기가 하고픈 말은 다 하는 게 인정받아야 하고 내가 듣지 않고 싶어하는 자유는 인정받지 못해야 하는 건가.


영화 속 아내의 캐릭터는 비단 여자이기에 그렇다고 하기엔 모순이 있다. 우리 주변을 훑어보면 유난히 자기 할말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본인은 그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너무 부담이다. 물론 옷을 갈아입는다며 나신을 들어내는 순간, 불지불식간에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건 실례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오늘도 한바탕 한 모양이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로케이션을 강행한 영화 속 배경에서 유난히 강원도 테마가 자주 등장한다. 대관령 목장, 용대리 황태덕장이며, 겨울 송어낚시터에 속초 바닷가에 평창 동계 올림픽 공사현장에 눈요기는 한 편의 강원도 관광코스를 둘러본 느낌이다.


이야기의 밑밥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 본격적 이야기 구조는 소위 카사노바라고 불리는 남자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아내를 유혹해달라는 남편의 使嗾에 제 아내가 좋아하는 수 십 가지 항목을 적어 건네는 순간 작업과 사랑의 딜레마는 시작되고 그때부터는 코믹 멜로드라마의 수순을 따른다. 그런데 한 가지 독특한 것은 카사노바 캐릭터의 극단적 오버스러움이다. 작업남으로서의 직업정신을 망각한 채, 마치 남의 부인 보기를 황금같이 보기 시작했으니 이들 세 명 사이의 미묘한 감정 싸움은 본격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했고 경제적 능력도 완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단지 성격차이로 인해 헤어짐을 결심한 부부 사이의 갈등과 봉합은 카사노바의 접착제 역할에서 기인하는 바 있지만 처음부터 이별을 논하기엔 그 결정적 사유가 약한 게 아니었나 싶었다.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여자라면 욕심을 부릴 법한 “내 마음을 좀 알아줘, 내 이야기를 좀 들어줘” 이 정도라면 좀 버틸만 하지 않겠는가?


사랑은 잃어버린 뒤 그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말처럼 슬픈 것도 없다. 이들이 잃어버린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지만 그걸 다시 봉합하는 방법도 결국엔 처음 만나 서로에게 이끌렸던 순간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지진이라는 매개가 이들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을 파괴해 놓는다는 지진이 오히려 사랑을 공고하게 만든 다는 건, 역설적이다. 대략 사랑은 아이러니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그나저나 박학다식하여 세상에 못하는 것 없을 것 같은 카사노바 선생의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찾을 수 있을까?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8.3
감독
민규동
출연
임수정, 이선균, 류승룡, 이광수, 김정태
정보
| 한국 | 121 분 | 201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