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야곱신부의 편지 - 진심어린 위로가 필요한 때라서

효준선생 2012. 5. 15. 00:23

 

 

 

 

 

노르웨이의 소녀, 어린 시절 엄마의 무지막지한 폭행으로 몸과 마음을 다쳤다. 왜 엄마가 금지옥엽 아이에게 폭력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그럴때마다 언니가 소녀를 대신해 매를 맞았다. 소녀에게 언니는 방패막이자 수호신이었다. 성인이 되자 이번엔 형부의 매질이 시작되었다. 자신을 지켜주던 언니가 형부에게 맞고 사는 걸 보자 어른이 된 소녀는 욱하는 심정에 형부를 죽이고 결국 수형생활을 하게 된다. 눈빛은 세상을 향한 분노의 그것이 되었고, 입은 걸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영화 야곱신부의 편지에 등장하는 무기수, 레일라 스텐에게 붙은 딱지다. 어느날 사면을 받아 야곱신부의 도우미로 일하게 된다. 그녀가 찾아간 야곱 신부의 거처는 사제관이었다. 비만 오면 빗물이 천정으로 새어 들고, 그가 먹는 것이라고는 딱딱하게 굳은 호밀빵 한 조각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이었지만 신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로만 컬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야곱 신부는 앞을 보지 못한다. 눈에 백탁이 끼어서 누군가 눈 바로 앞에다 칼을 휘둘러도 반응이 없다. 야곱의 하루는 단순하다. 각지에서 부쳐온 편지에 성경구절을 적절하게 섞어 회신을 해주는 일상이다. 눈이 보이지 않자 레일라는 야곱을 대신해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써내려간다.


이 무료할 것 같은 일상에 유일한 외부인이라 할 수 있는 우편배달부의 반응은 의외다. 레일라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도망을 치는 바람에 편지가 제대로 배달되지 않고 몇 장 받은 편지는 레일라에 의해 유기되곤 했기에 야곱신부에게 전해지는 편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야곱에겐 산다는 것의 방증인 편지가 레일라에겐 그냥 귀찮은 일이었다.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어느덧 드문 세상이 되었다. 누군가를 생각해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고르고 심지어 여러번 고쳐 쓴 편지를 부친다는 것, 정성이 가득한 편지를 받을 때의 기분은 받아본 사람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듯 편지는 희소해졌고, 야곱신부에게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야곱신부는 갈수록 추레해졌다. 속옷바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아무도 찾지 않는 성당에서 혼자 주례사를 낭독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쓸쓸해 보였다.


어느날, 사제관을 떠나려던 레일라는 다시 그곳에 주저앉아 야곱신부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건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폭력의 희생자이자 동시에 가해자로 평생을 살았던 자신을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야곱 신부의 편지였다는 사실, 그토록 하찮게 여겨 아무렇게나 대했던 그 수많은 편지속에 자신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부끄러웠다.


야곱 신부에게 전해지는 편지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약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스승으로부터의 학생, 폭력 남편으로부터의 아내. 만약 이들이 야곱신부의 편지를 받지 못했다면 또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는 곁가지를 치지 않고 한결같이 편지속 주인공과 레일라의 과거를 연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드러나지 않게 서서히. 리사 스텐의 편지가 그녀의 두 손에 건네질 무렵에서야 이야기의 전말은 밝혀진다. 마치 망치로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면서 여운이 긴꼬리처럼 드리우면 어느 새 벌써 영화는 끝을 알리고 있었다.


영화 야곱신부의 편지를 보면 긴 러닝타임이 좋은 영화의 척도라는 말은 감히 할 수 없다. 인해전술과 대규모 자본이 투하되는 전쟁같은 영화가 멋진 영화라는 말도 감히 할 수 없다. 배우들의 진정성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비틀거리지 않고 올곧게 진행되는 영화라면 겨우 74분짜리 영화라도 “인상적이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다.

 

 

 

 

 

 

 

 

 


야곱신부의 편지 (2012)

Letters to Father Jacob 
9.8
감독
클라우스 해로
출연
카리나 라자르드, 헤이키 노우시아이넨, 주카 케이노넨, 에스코 로인
정보
드라마 | 핀란드 | 74 분 | 201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