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이방인들 - 느린 호흡속에서 찾아낸 기억의 파편들

효준선생 2012. 5. 12. 00:20

 

 

 

 

 

부산 강서구, 낙동강 하구언이 지나는 그곳에 지하철 종점이 있다. 쇼팽의 야상곡이 들리면 종점에 왔다는 신호다. 여자는 혼자 지하철에 앉아 무료한 듯, 조금은 긴장된 듯 차창을 바라보고 있다. 내릴 준비를 한다. 청년이 그녀를 맞아준다. 이튿날부터 여자의 발걸음이 그 일대를 돌아다닌다.


영화 이방인들은 과거의 단절된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한 젊은 여자의 묵시록 같은 이야기다. 그 안에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과 인물들이 담겨져 있고 편치 않은 이야기를 해야하는 순간이 또 한 명의 인물과 겹쳐 보는 내내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스릴러같이 어느 순간 폭발하는 맛은 없었다. 느려도 이렇게 느릴 수 있나 싶게 주인공들의 대사 사이의 간격을 극대화시켜 놓았다. 공기가 희박해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인물들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했다. 원수일 수도 있었는데, 영화는 이들의 만남을 최후까지 미뤄두는 바람에 추측만 할 뿐 확실하지 않은 채 느린 앵글만 따라 다녀야 했다. 특히 길에 멈춰 서있는 주인공들의 뒷모습이 유난히 많았고 롱테이크와 역광도 두려워하지 않은 카메라워크가 인상적이었다. 


세 명의 주인공, 여자, 청년, 그리고 장난감 공장 사장의 운명은 공장내 기숙사에서의 화재 사건에서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 여자의 엄마와 청년의 아버지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이 사고와 장례가 현재의 이야기라면 여자와 사장의 옛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다. 그런 이유로 여자는 자신이 살았던 그곳에서 자신의 흔적을 샅샅이 훑어가면서 한 편으로는 지우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녀를 통해 미래를 보고 있다.


외부모에 의해 자란 한 소녀의 이야기, 버리고 싶었지만 다시 떠올라 버린 과거의 기억들. 여자는 거리에서 오열했다. 그렇게 해서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아무도 들춰낸 바 없기에 혼자만이 간직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청년과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모터 보트 안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약간의 희망을 볼 수 있음에 만족한다. 그녀를 보니 세상에 이방인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들 (2012)

The Strangers 
7
감독
최용석
출연
한수연, 여현수, 김중기, 최진선, 김종수
정보
드라마 | 한국 | 127 분 | 201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