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 - 여자아이는 꿈을 먹고 자란다

효준선생 2012. 4. 27. 00:09

 

 

 

 

 

 

영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제목에서 주는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의 이미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간혹 연극의 한 장면을 이어보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편의 잔혹동화를 잘라서 엑기스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독특한 구성과 내용전개로 보는 내내 오묘함을 느꼈다. 판타지물이면서도 신화적 요소도 내포하고 여자아이들의 내면을 영상화 하는 것 같아 성장 심리학의 일부를 공부하는 느낌도 받았다.


100년이라는 시간에 초점이 맞춰지므로 대략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유럽 어디쯤에 있는 작은 나라에 아나스타샤라는 공주가 타어났다. 그런데 신생아를 들고 있던 마녀는 갑자기 아이가 16세가 되는 날 손가락이 찔려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리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를 목도한 세 명의 요정들은 공주가 죽는 대신 100년간 깊은 잠에 들 것이라며 저주를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영화는 공주가 점점 자라면서 마치 여행을 다니는 듯한 이야기 구성을 통해 각양각색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무대위에서 일본 풍의 옷을 입고는 춤을 추며 놀던 아이들 속에서 함께 하기를 거부하던 소녀가 온몸에 종기가 난 괴물을 물리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 뒤 그곳을 빠져 나와 엄마와 초등학교 고학년 쯤으로 보이는 소년이 사는 집을 찾아간다. 소년을 오빠라 부르며 따르던 아나스타샤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오빠를 찾으러 길을 떠나고 그때부터 우리가 상상속으로만 느꼈던 영상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난장이 역장 혼자 있던 간이역, 눈썹이 하얀 어린 남매가 살던 왕궁, 집시소녀, 설원에서 혼자사는 에스키모 할머니등등, 소녀가 찾아간 곳은 모두 그녀의 꿈속인 셈이다.


찾아가고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는 그저 눈으로 보고 지나치기엔 함의가 적지 않다. 난장이를 통해 키가 크고 싶다는 소망이, 눈썹이 하얀 남매가 사는 왕궁이 보여준 가족애, 집시소녀를 통해 느꼈던 2차 성징의 시작, 설원의 할머니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축약된 셈이다. 그리고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이팔청춘의 몸, 이성친구와의 하룻밤과 그로인한 임신, 그렇다고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게 자신이 선택한 결과라며 담담히 받아들인다.


엔딩장면에서 침대에 누운 여자의 허벅지를 비춘다. 검은 스타킹이 찢겨진 채로 보여졌다. 무슨 의미였을까? 질곡같은 여성성의 해방은 아니었나 싶다.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가정하에 등장인물은 동화속 인물같은 캐릭터에서 벗어나 오늘날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럼 아나스타샤는 저주에서 벗어난 것일까? 16세에 손가락이 찔려 죽을 것이라는 말은 남성에게 이성으로 간주되는 여성의 여성성의 시작점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나의 에피소드가 5분 남짓했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파편처럼 연결되지 않아 이 영화를 독특한 독법으로 보지 않고 시간배열적 서사구조로 이해한다면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동화적 이벤트로 점철된 듯 싶지만 요즘 개그 콘서트의 그것처럼 뭔가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본 다면 이 영화는 여성성에 목매며 사는 오늘날의 관점에 작은 타격을 가하는 셈이었다. 어린 배우(카를라 베사이누 분)가 하도 새초롬한 연기를 해보여서 마음에 쏙 들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2012)

The Sleeping Beauty 
8
감독
카트린느 브레야
출연
줄리아 아르타모노프, 카를라 베사이누, 다비드 쇼세, 케리안 메이안, 다이애나 루디셴코
정보
드라마 | 프랑스 | 82 분 | 201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