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시간의 숲 - 힐링이 화두가 되는 세월에 살다

효준선생 2012. 4. 24. 00:15

 

 

 

 

 

배우 박용우는 지쳐보였다. 2009년 핸드폰에서도, 2011년 아이들에서도, 그리고 올해 파파에서도 캐릭터가 그래서 그래보였는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에게는 충전이 필요한 시간으로 보였다. 그즈음 감독 송일곤은 그를 불렀다. 같이 일본에 가자고, 그렇게 해서 영화 시간의 숲은 만들어졌다. 요즘 힐링이라는 화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sbs 프로그램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치료, 치유를 의미하는 힐링은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유의미한 처치가 아닐까 싶다. 무엇 때문에 다쳤을까? 산등성이에 설치된 올무에 걸린 초식동물처럼, 옴쭉달쭉하지 못한 채 하루를 사는 현대인들. 그들에게 신령스러워 보이기조차 하는 일본의 어느 산속은 삼나무가 뿜어내는 치톤피드처럼 상쾌해 보였다.


요즘 영화관에는 4D라 해서 영화 진행장면에 맞춰 입체영상에다 진동과 각종 효과음을 섞어서 마치 화면속에 들어간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하던데 이 영화는 무엇보다 산속의 청량한 내음을 우선적으로 선물했다. 푸르름이 지나쳐 눈을 버리게 할 정도의 짙은 녹음,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청량하다 못해 증류수 마냥 신선한 雨水는 입을 헤벌리고 그대로 마셔도 될 듯 하고, 수천 년 樹齡을 자랑한다는 삼나무에선 금방이라도 나무의 정령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한일 양국의 배우 박용우와 다카기 리나는 이 영화의 나레이터이자 윤활유로서 작용한다. 감독의 카메라는 일체의 간섭 없이 둘을 뒤 쫒는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반씩 혼합한 특이한 질감이다. 연기라기보다 두 배우에게 현재 닥친 일상의 고난과 치유의 답을 그들 스스로가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한국영화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박용우의 이야기가 90%가 넘는다. 그에 비해 신묘한 분위기의 다카기 리나의 이야기는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그녀의 이야기도 무척 궁금한데, 아무튼 이 영화를 찍던 즈음 박용우에게 일어났던 약간의 사생활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그. 그리고 곁에서 그의 마음이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돋보이는 리나짱. 제법 잘 어울렸다.


열흘간의 시간동안 어색했던 첫 만남부터 열흘이 지나고 박용우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영화를 찍고 새 영화의 기자회견까지 하는 모습, 그리고 기후 사정상 이들이 함께 보러가지 못한 조몬스기(7,200년이나 된 삼나무)를 다시 찾아간 리나짱의 모습까지. 그 어떤 극 영화이상의 시원함과 후련함을 선사했다.


관광학 개론 첫 페이지에 여행, 혹은 관광의 정의가 나온다. 일상의 번잡함을 피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라는 정의가 마음에 든다. 여행은 목적을 수반하지 않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생고생을 해가며 목표에 깃발을 꽂는 것도 여행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도 역시 여행이다.


다들 사는 게 힘들어지면 여행을 꿈꾼다. 일본의 작은 섬, 야쿠시마에서의 열흘, 이들 배우들이 말하는 것들, 그리고 카메라 앵글로 비춰지는 풍광들, 대사보다 더 멋진 빗소리의 향연들. 스크린을 온통 푸른빛과 녹빛으로 채워버린 카메라 앵글들. 오금이 저릴 정도가 된다. 배우들은 일상을 되찾고 관객들은 배우들이 떠난 그곳에 마음을 두고 온다.


어떤 나무이야기를 해보자. 나무가 썩어 죽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홀씨가 죽은 나무 등걸을 바탕삼아 그 위에 싹을 틔우고 다시 자라났다. 그리고 바로 옆 나무와 손을 잡고 연리지(連理枝)가 되었다. 그게 1,000년의 시간동안 벌어진 일이다. 100년도 채 못살고 죽으면서 아등바등거리는 인간들에게 나무는 그 자리에서 허리를 굽혀 내려다본다. 날씨 탓을 하며 알현도 못하고 물러가지만 나무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주말엔 근교 산에라도 가봐야겠다.

 

 

 

 

 

 

 

 

 

 


시간의 숲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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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송일곤
출연
박용우, 타카기 리나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6 분 | 201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