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레드 마리아 - 세상의 반은 여자라는데... 여전하다

효준선생 2012. 4. 26. 00:05

 

 

 

 

여성들의 배가 차례로 보여졌다. 생김새는 모두 제각각이다. 그런데 배에 희미한 혹은 선명한 칼자국이 보였다. 아이를 낳은 흔적들인 모양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흔적이 아니기에 그들의 배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해 다음세대를 양육하는데 필수불가결한 토양인 셈이다. 영화 레드마리아는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여성 감독의 눈으로 한국, 필리핀, 일본의 그녀들을 만나며 몸소 느끼고 카메라에 건져올린 생생한 기록물이었다.


여성들의 배를 지나 카메라 앵글이 따라간 곳은 녹록치 않은 곳들이다. 한국 모 전자회사앞의 농성장, 평택 집창촌, 일본 모 전자회사의 해고노동자, 홈리스여성, 필리핀의 미혼모 보호시설등을 훑었다. 그 외에도 간간히 이주여성의 모습, 그리고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이들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맥락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파편처럼 튄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그녀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을 급하게 담아낸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작위적이지 않다. 날 것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녀들의 모습은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웃음도 있다. 그녀들을 한 길로 내몬 남성위주의 사회에 비난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음을 안다고 말하며 허탈하게 웃는다. 그것은 생존때문인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 위해, 싸움 상대를 긴 안목으로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의 상대로 등장하는 것들은 마치 거대한 암벽처럼 느껴졌다. 하청업체를 우습게 보는 대기업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루살이 인생정도로 치부하는 경영자들, 농성현장에서 메가폰만 잡으면 힘을 얻는 듯한 민중의 지팡이들, 이미 세월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본 군인들, 여성은 돈으로 사서 자신의 만족을 채우면 된다는 사고 방식의 남성들. 이들을 일깨우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영화는 휙휙 훑고 지나가는 방식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간히 카메라를 든 감독의 음성이 섞여든다. 감독이라고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는가 그러나 배우(?)들의 호기심에 간단한 반응만 보이며 간섭을 배제하려고 한다. 영화의 끝은 다시 여성의 배다. 앞부분에서는 얼굴이 나오지 않았지만 말미에서는 얼굴을 노출한다. 그런데 다들 웃고 있다. 옆에는 그 뱃속에서 나왔을 법한 아이들이 신명난 얼굴로 따라 웃고 있다. 여성은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탄력도 없고 어느 정도 축 쳐져 볼품 없는 뱃살들이지만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이 지나쳐왔고 만들어져 왔다.


남성들로서는 생경해보이는 장면과 대사들도 많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여성들만 보라는 법은 없다. 알지 못하기에 공유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 혼자 살 요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당신의 엄마도, 아내도 여자다. 레드 마리아처럼.

 

 

 

 

 

 

 


레드마리아 (2012)

Redmaria 
10
감독
경순
출연
그레이스, 리타, 모니카, 사토, 순자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8 분 | 2012-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