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리그렛 - 옛사랑과의 해후, 그 잘못된 만남

효준선생 2012. 4. 16. 00:08

 

 

 

 

지나간 사랑을 복기하는 건 위험하다. 사랑을 놓쳤을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그걸 망각하고 한때 즐거웠던 기억, 지금 이성적으로 끌린다는 이유로 옛사랑을 갈구하는 건 그래서 하지 않음만 못하다. 옛사랑을 찾는 다는 건 지금 사랑에 대한 무례이자 책임회피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흔들리는 마음마저 제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한정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쿨하게 옛사랑을 보내는 것도 아름답다고 여겨보자.


영화 리그렛은 바로 이 옛사랑을 다시 만나 파국적 결말에 이르는 동안 남자와 여자의 측면에서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어떤 갈등과 심리구조를 갖는지에 대해 격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영화다. 제목으로 사용된 리그렛은 후회, 유감, 한탄이라는 뜻으로 이 영화속 대사에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무엇에 대한 후회일까?


어머니의 임종을 위해 고향집에 내려온 남자, 파리에서 작은 건축사무실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면서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러다 거리에서 예전에 사귀던 여자와 해후하면서 사단이 발생한다. 물론 여자에게도 남자가 있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다. 둘이 만난 곳은 여자의 집이다. 그러지 않을 것처럼 굴다가 마치 욕정에 굶주렸던 맹수들처럼 서로의 몸을 탐닉해간다. 마치 예전 젊은 시절을 회상하듯.


큰 파도가 지나간뒤 이들의 반응은 겹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다. 한번의 정사로 지금까지의 서로의 가정은 나몰라라 해도 되는 것일까 싶게 맹목적이다. 고민의 여지도 없어보인다. 불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감정의 휴지기도 있다. 문제는 그 선택을 오로지 여자만 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스치듯 언급되지만 예전 이들이 헤어진 결정적 이유를 여자는 오로지 남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 장면이후부터는 마치 그날의 복수라도 해대듯, 여자는 수를 쓴다. 하지만 겉으로 들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남자의 폭력적인 요구에 혀를 차게 만든다.


남자의 행위는 가관이다. 집에 가려고 기차를 기다리는 여자에게 다음 기차를 타라 하며 노골적인 성적 유혹을 한다. 호텔 스위트룸을 예약하고 마냥 여자를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덫에 빠진, 발정난 숫컷 양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건 호텔로 찾아온 여자가 아내의 전화를 받는 남자 몰래 호텔을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장면이다.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어리석게도 그녀는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다. 보이지 않는 복수처럼 보였다. 자신의 가정도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남자를 곁에 두려하는 모습이 유혹의 화신, 복수의 화신처럼 보였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시간의 흐름을 자막으로 표시해두고 있다. 몇 달 뒤, 몇 년 뒤 하는 식으로, 15년전 한차례 찾아왔던 사랑의 감정이 오늘날처럼 육욕으로 해결보는 정도라면 과연 이들은 제대로 된 사랑을 한 것이 맞는 걸까? 가정고 일을 모두 포기하고 여자를 찾아나서며 제 화를 이겨내지 못하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맞다는 기분이 든다.


한국 영화 <건축학 개론> 이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주조로 한다면 이 영화는 옛사랑에 대한 왜곡한 가치관의 투영이 주된 소재라고 보면 된다. 사랑은 할 때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깨지고 나서는 차라리 없던 일처럼 기억에서 지워지는 편이 나을 때도 있어 보인다. 하기사 추억을 먹고 사는 인간에게 그런 기억마저 지워진다면 너무 삭막한 것일까? 사랑했던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걸 후회하는 게 더 큰 기억으로 남는다.   

 

 

 

 

 

 

 

 

 

 


리그렛 (2012)

0
감독
세드릭 칸
출연
이반 아탈,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아를리 호베르, 필리페 카테린느, 프랑수아 네그레
정보
드라마 | 프랑스 | 106 분 | 201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