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봄, 눈 - 봄눈이 오는 날 먼길을 떠나네

효준선생 2012. 4. 10. 00:02

 

 

 

 

 

태어나고 죽는 일은 사람이 하는 가장 근원적인 흔적이다. 누군가의 누구로 태어나 잘살다 그 누군가의 근심속에서 스러지는 과정, 그게 인간의 삶의 전부다. 그 사이에 사는 과정은 모두 다르지만 처음과 끝이 같기에 사람을 한자로 인간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다시말해 한자 인간은 사람 사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죽는 사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영화 봄, 눈을 보면 그다지 부유해보이지 않는 서민가정, 생활력 강해보이지 않는 실업자 남편과 장성한 자식사이에서 남들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 평범한 생활을 하는 쉰 셋의 초로의 여자가 바로 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시작장면과 그녀가 떠나고 난 뒤 두 번 나오는 부산 어느 작은 언덕길의 버스 정류장 모습이 그녀의 운명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일부러 기울어지게 찍은 언덕길이 인상적으로 오프닝을 알리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나오는 모습을 보면 그 초로의 여인도 한때는 자신의 손녀처럼 어리고 귀여웠을때가 있었을 것이며 자신의 딸처럼 사랑을 만나 설레였던 청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을 다보고내고 이제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하려는 순간, 뜻밖에 루즈타임이 지나면 경기종료 휘슬이 울린다니 그녀로서는 억울할 만도 해 보였다.


최루성 영화임은 포스터만 봐도, 예고편을 가득채운 연극배우 윤석화의 떨리는 목소리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정을 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는 가정주부,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다 제 꿈은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날, 그런데 왜 영화속 死神은 이런 중년 여자들만 데려가려는 걸까? 아마도 한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게 절대적으로 녹록치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슬픔의 시퀀스 중에선 두 군데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는 머리를 감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지자 집에서 쓰는 가위를 들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모습은 장면뿐 아니라 서걱거리는 가윗날 소리에 명치가 울리는 듯 싶었다. 죽음을 앞둔 자의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제거하는 모습, 흉하게 보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해서라도 아직은 숨쉬고 잇음을 말하려는 애씀. 또 하나의 장면으로는 멀리서 사는 친정엄마가 딸이 입원한 병원 복도를 나서 돌아서 가는 모습이다. 어쩌면 이승에선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길임을 알았을때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 사람은 죽고 새 생명은 새로 잉태되어 태어난다. 든 사람은 새로운 축복속에 새 희망이 될 것이고 난 사람은 누군가들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자리하다, 또 그 누군가들이 사라질때 비로소 그 기억도 지워져갈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먼 선조들의 죽음을 가슴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올해 봄은 오지도 못하고 그대로 스러질 모양이다. 며칠 전 4월에 진눈깨비 눈이 내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봄에 내리는 눈, 올 겨울을 이기지 못할 어떤 이의 간절한 소원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 큰 모멘텀이 된 오래된 노래 봄날은 간다가 두 번 나온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는데 자꾸 그 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나이가 드는 모양이다.

 

 

 

 

 

 

 

 

 


봄, 눈 (2012)

9.9
감독
김태균
출연
윤석화, 임지규, 이경영, 김영옥, 심이영
정보
드라마 | 한국 | 109 분 | 2012-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