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어머니 - 사랑하는 아들 곁에서 행복하소서

효준선생 2012. 3. 31. 11:46

 

 

 

 

 

1970년 11월 13일 박정희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노동자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했다. 기계의 부속품과 동일시되어 그저 고개만 숙이고 묵묵히 미싱만 돌리던 청년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노동자의 목소리가 가장 절실하게 울려 퍼졌던 그때, 그 청년의 어머니가 오열을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청년 전태일이 스러진 그 자리엔 흉상과 그의 이름을 딴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작년 청년의 뒤를 따라 그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이름, 이소선.


태어날 때 하도 체구가 작아 작을 소, 선녀 선을 넣어 지은 이름이라며 멋쩍게 웃는 그녀는 이웃집 할머니가 진배없었다. 영화 어머니의 시작은 그녀가 타계하는 순간, 병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의도된 바는 아닐테지만 영화를 찍고 있는 한 가운데 주인공의 타계소식은 충격이다. 그렇게 해서 이 영화는 한국 노동운동의 한 복판에서 지금까지 볼런티어로서, 중재자로서 활약한 어느 어머니의 일생을 담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종로구 창신동 그리 크지도 않은 연립주택 방 한칸은 이 영화의 주요한 이야기가 흘러나는 공간이다. 많은 이야기, 심각한 이야기는 없다. 그저 일상을 따라다는 것으로 채워나갔음에도 군데 군데 물빛처럼 번져가는 이야기들이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될 이야기인 것 같아 눈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노동자에게 인권이라는 말이 참으로 생소하게, 혹은 어울리지 않게, 혹은 배부르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죽기 기를 쓰고 생업에 달려들지만 주어진 것은 삭아가는 몸뚱아리와 입에 풀칠할 수준의 재화일뿐이다. 요즘들어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어도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40년 전 한 청년이 울분을 토하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영화 속 이소선은 단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 묘소에 가서도 오히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과 마치 마실 나온 동네 노파처럼 살갑게 대하며 친근감을 표시하고 유난히 뭔가를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며 오래 오래 살기를 바라는 주변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 병원 장면에서 시작해 한 달 전,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10년 11월 전태일 열사 40주기 행사때 까지로 되돌리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노화가 확연하게 보인다는 말이 있듯 겨우 1년 남짓의 시간임에도 그게 얼굴에 드러나 보였다.


이 영화는 어느 부부 연극배우의 이야기도 삽입해 놓고 있다. 그 이야기 자체가 전태일과 그 어머니의 해후를 그린 내용으로 마지막 공연에서 이소선을 초대하려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도 영화의 한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피고 지는 건 한 순간인 듯 싶다. 더 이상 불의의 세력에게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칠 힘 조차 없어지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렸던 이소선은 결코 지치지 않는 기색으로 이날까지 왔다. 설사 상대가 들은 척 만 척 했다손, 그녀의 존재는 무시되어선 안 될 일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태준식은 2009년 겨울 인디스페이스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 샘터분식의 연출자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이소선을 마치 친어머니처럼 부르며 따르는 모습이 영화감독이 아니라 회고록을 집필하는 작가처럼 느껴졌다. 연출의 간섭이 곳곳에 펼쳐졌고 주인공이 감독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도, 심지어 카메라를 내려놓고 손발톱을 대신 깎아주는 장면도 삽입되어 있다.


예전 영상이 스치듯 흘러가는 중간에 젊은 시간 노통의 모습도 보였다. 그랬구나.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죽은 자가 남기고간 절규는 여태 사람들 사이에서 맴돈다. 알게 모르게 강렬하게.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전파될 것이다. 그것이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어머니 (2012)

Mother 
10
감독
태준식
출연
이소선, 전태삼, 왕모림, 백대현, 홍승이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101 분 | 201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