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이민자 - 아들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먹고 자란다

효준선생 2012. 3. 29. 01:45

 

 

 

여유있는 건폐율을 자랑하는 엘에이 일대의 저택들, 피부색이 주인과는 좀 다른 정원사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마치 가위손이라도 달린 듯 웃자란 정원수들의 가지를 쳐내는 모습이 마치 세상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배제시키는 동작처럼 보인다. 그렇게 整齊된 정원수는 깔끔해서 더 이상 손 볼 필요가 없어지면 정원사들은 일당을 받고 그곳을 떠나야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도시의 허드렛일은 결코 그 도시출신들이 하지 않는다. 도시의 미관을 치장하는데 동원되고 고용되는 부류는 도시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곳 출신들의 차지가 된다. 미국 천사의 도시엔 멀리서 날아온 이방인들이 그 역할을 맡곤 한다. 지역적 접근성 때문에 주로 멕시칸들이 많은데 그들에겐 그곳이 아메리칸 드림의 목적지와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삶의 마지막 종착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하는 잠시의 터전이 된다.


마음 놓고 정주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힘에 부친다. 2m도 안되는 몸 하나 누일 곳 없는 거대도시, 자질구레한 잡역부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민자 카를로스에게 희망이란 아들 루이스 뿐이다. 물론 자신은 불법체류자로 무면허로 차를 몰며 정원사로 일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루이스는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영화 이민자는 외지로부터 유입된 삶은 얼마나 신산한지, 헐겁기만 가족간의 이해와 사랑이 얼마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얻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카를로스의 바람과 달리 한창 사춘기인 루이스는 제멋대로인 또래와 다르지 않다. 주먹질을 하다 훈방조치되고 아버지에 대해 눈꼽만큼도 연민은 없다. 극에서 등장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증오를 편부에게 쏟아버리는 것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인다. 질나쁜 친구들의 유혹이 서서히 다가오는 순간,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고 여동생의 비자금까지 동원해 트럭을 산다. 그 트럭은 부자의 모든 꿈이 담긴 물건이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일로 트럭을 도난당하고 그 트럭을 함께 찾아다니며 부자에겐 함께 꾸는 꿈이 조금씩 생겨났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남의 나라에서 사는 이민자들의 하루 하루를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면 실루엣처럼 보여지는 것들과, 부자의 갈등과 밋밋한 일상이 짜깁기 된다. 본격적인 비등점은 역시 트럭을 찾아나서는 시점부터인데, 통쾌한 한 장면에선 부자와 관객이 한데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선 다시 본연으로 돌아와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대해 미국이 어떤 판결을 내리는 지에 대해 구구하게 설명을 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이미 카를로스의 팬이 된 관객입장에선 주인의 입장만 강변하는 것같아 심히 답답하지만 카를로스는 오히려 담담해했다. 그의 이런 성격은 영화 전반에서 드러나는 데 그는 결코 꼼수나 편법이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어쩌면 남의 나라에서 들키지 않고 사는 처세라고 보인다. 서로를 등쳐먹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민자들끼리의 갈등, 그리고 경찰에게 체포되는 순간, NGO에게 처결에 대해 설명을 듣는 순간에도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침착하고 차분했다.


그의 이런 모습은 드라마 극이 갖는 진정성 결여를 보완해주며, 순간적으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신실감마저 야기했다. 진짜로 존재하는 이민자 카를로스처럼 그는 움직이고 행동했다. 아들과의 수선스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자신이 이루지 못한 아메리칸 드림의 재현을 위해서였는지 모르지만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갑시다”라며 석양을 향해 씩씩하게 걷는 모습에서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이 되길 바랬다.


카를로스와 루이스가 도난 차량을 찾아다니는 중간에 멕시코 문화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페스티발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에서 자란 루이스에게 멕시코의 전래음악이 익숙할 리 없다. 아들은 스페인어조차도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세계에 동화되었다. 카를로스가 부르는 노랫가락이 이들 부자의 마지막 정체성의 연결고리라면 그것도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이 영화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자장가이자 아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사부곡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국경선으로 막을 수 없는 부자간의 정이 있다.

 

 

 

 

 

 

 


이민자 (2012)

A Better Life 
10
감독
크리스 웨이츠
출연
데미안 비치르, 호세 줄리안, 호아킨 코시오, 낸시 레네한, 가브리엘 차바리아
정보
드라마 | 미국 | 97 분 | 201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