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그녀가 떠날 때 - 성염색체 XY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효준선생 2012. 3. 27. 08:39

 

 

 

 

出嫁外人이라는 말로 여성을 속박한 지 수백, 아니 수천년, 모계사회에서 수렵과 사냥으로 대변되는 부계사회로 전환된 뒤 여성에 대한 사회적 권한은 남성의 범주안으로 쪼그라 들었다. 근세기 들어 여권신장이라는 기치하에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특정 문화권역 안에선 여전히, 아니 다른 문화권에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운 그런 처지의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히잡이라는 검은 천, 눈과 얼굴 일부만 내놓은 채 자신의 몸을 감싸지만 결코 그녀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보호막도 여지없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좁아터진 움직임의 제한, 그저 양육에만 매달리는 존재로 머물던 그녀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비단 그녀가 울타리 밖으로 달아나서기 때문이다 라고만 할 수 없어 보였다.


한 번 시집을 가면, 그 집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이땅의 수많은 여성들, 그들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자기의 딸, 며느리에게도 똑같은 구속을 내리는데 익숙하다. 아니 더 옹골차게 남자의 대변인을 자임한다. 여성성을 배제한 엄마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영화 그녀가 떠날 때를 보는 내내 분노가 치밀었다. 왜 저러고 살지,다른 세상이 있을터인데 왜 그녀는 자신을 홀대하는 아무 쓸모도 없는 가족에게 기대려고만 하지 라는 알 수 없는 의문을 동반한 분노였다.


이 영화는 스릴러적 요소가 상당히 강하게 작동했다. 남편과의 무의미한 결혼 생활, 더 이상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어린 아들만 데리고 친정이 있는 독일로 도망쳐 온다. 안전지대로의 귀환이라고 생각한 여자, 남의 나라인 독일로 이주한 터키 이민자 가족인 그녀의 친정은 그녀의 바람대로, 한국인의 관습적 시각대로 안온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범이 있는 곳을 피했더니 사자가 있는 동굴이라는 말이 정확했다. 출가외인이 다시 돌아온 사실이 마치 가문의 수치라도 되는 양, 가족들은 그녀를 몰아세운다. 보이지 않는 投石刑과도 같은 압박, 그녀는 다시 떠난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평화는 보장되지 않는다. 그녀를 뒤를 따라붙는 거친 발걸음, 그야말로 공고하게 말라붙은 가부장적 제도의 비수였다.


한국에서의 상황을 그려보자.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의 시집간 여자, 남편과의 마찰로 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할만한 것은 별로 없다. 친청 엄마와의 살가운 대화, 결혼을 앞둔 여동생과의 쇼핑, 어릴적 자신을 아껴주던 오빠와 자기가 키우다시피한 남동생과 다시 새 삶을 시작하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일소되어 버린다. 그 이유는 하나다. 집안의 수치.


문화는 일순에 바뀌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들의 문화가 있다. 그걸 도외시 하거나 경원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문화안에서 이유없이 차별당하는 힘없는 대상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선 어느 정도 비판적 정서를 견지해야 마땅하다. 영화속에서 이리 저리 채이는 여자에게 다가온 독일 남자가 하나 있다. 관객들은 다들 응원했을 것이다. 무슬림 문화에서 벗어나 게르만 문화로 들어가면 조금 낫지 않겠나 하고, 그러나 그런 무언의 응원도 빛을 바래게 만들어버렸고 그 과정이 상당히 압축적이며 비장하다.


엔딩은 생각외다. 세상에 그 정도일까. 혹여 전생에 축생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체 무슨 잘못이 있길래. 아마 이 영화를 무슬림 남성들과 같이 보았다면 그 문화적 사고의 편차로 싸우지나 않았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한국여자와 결혼할 한국남자에게 보편적 페미니즘이 투영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걸까 그리고 그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터키어와 독일어가 엄청나게 큰 갭을 가지고 다가선다. 이 영화에 국한해서 마치 악마의 언어와 천사의 언어처럼 들린다. 무조건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이 동네로 시집간다고 할 아는 한국여자 있으면 이걸 말려야 하는걸까. 제발 편견이길 바란다.

 

 

 

 

 

 

 

 


그녀가 떠날 때 (2012)

When We Leave 
9
감독
페오 알라닥
출연
시벨 케킬리, 니잠 쉴러, 데르야 알라보라, 세타 탄리오겐, 타메르 이깃
정보
드라마 | 독일 | 119 분 | 2012-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