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디어 한나 - 곯아 터진 상처를 부여잡고 사는 사람들

효준선생 2012. 3. 29. 00:02

 

 

 

 

 

괴로운 모양이다. 기껏 사설경마 게임에서 돈을 잃고는 키우던 개를 발로 차 죽이고 당구장에서 시비를 거는 아이들을 패주는 남자. 주름살이 자글거리고 검은 머리카락을 찾을 수 없는 초로의 노인으로 보이지만 성격 한 번 까칠하다. 동네를 휘저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말리는 사람도 없다. 출감한지 얼마 되지 않은 범죄자의 형상이지만 정확해 보이지는 않는다.


트라우마가 가슴속 깊이 자리해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 머리보다 주먹이 앞선다. 그걸 힘들어 하는 걸 보니, 천성이 악한 건 아닌 모양이다. 카페에 혼자 앉아 자책하는 모습을 보니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남자는 아내를 잃었다. 뚱뚱하다 해서 공룡으로 놀렸던 아내가 죽자 그는 변했다. 눈빛이 변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슬슬 피했다. 아내의 죽음, 남자의 자학. 영화 디어 한나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남자 이야기다. 그럼 죽은 아내의 이름이 한나인가? 아니다.


원래의 제목은 공룡의 일종인 티라노소어다. 이 별명은 남자의 죽은 아내에게 붙여져 희화화 되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티라노소어 여사”가 아니라 한나다. 한나는 누구인가? 남자가 우연히 들어간 자선가게, 헌옷과 비품을 기증받아 여기서 수입을 내는 사회적 기업이다. 가게 주인인 여자는 갑작스런 방문객을 두려워 하거나 기피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를 하고 차를 내다 주었다.


남자에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선의였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여자 한나의 일상을 묘사하는 포커스로 전환된다. 사람들은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듣는 사람의 기분은 상관없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걸 좀 알아달라며 죽는 소리를 한다. 실상,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더 힘든지도 모르고.


이 영화의 주제를 하나만 고르라면 가정폭력이다. 한나는 변태 성욕자에 심각한 의처증환자인 남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서구 가정 안에서의 생각지 못할 정도의 가정폭력이 수위 높게 펼쳐 보여지자 곳곳에서 놀람과 한숨이 교차되었다. 코너에 몰린 채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에서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남자가 한나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거처를 도피처로 제공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내면에서 외부로 돌린다. 어느새 남자는 조금씩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와 반대로 종교의 힘에 의지하며 스스로를 겨우 견디어 내던 여자는 점점 힘에 겨워했다.


영화의 또 한 가지 축은 남자의 이웃집이다. 엄마의 남자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곤혹스런 10살 꼬마 샘,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개와 함께 하지만 아무도 소년을 관심있게 보지 않았다. 남자가 오다가다 샘에게 말을 붙여보지만 샘에게 가정은 매우 불완전 개체였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운명이라고 믿는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아내를 잃은 남자, 남편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 가족의 부재속에서 불안한 환경에 내몰린 아이. 이들은 수시로 교차하지만 구원의 주체가 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영화 내내 사나워 보이는 개가 어슬렁거렸다. 애완견이 아니라 마치 세상의 모든 독한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비록 목줄이 달려있지만 언제든지 끊고 달려들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고 충격은 예상한 바대로 드러났다.  


영화 디어 한나는 남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지금까지 깨지고 무너지고 파괴된 가정과 방치되다 시피한 가족 구성원의 문제를 끄집어내 그 깊은 상처에 대한 치유의 방법이으로 제시되지만 너무나 큰 내상을 안은 끝인지라 영화가 끝난 뒤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문제여서였을까 아니면 누구도 치유할 수 없을 거란 심리적 공황을 느껴서였을까 

 

 

 

 

 

 

 


디어 한나 (2012)

Tyrannosaur 
9.2
감독
패디 콘시다인
출연
피터 뮬란, 올리비아 콜먼, 에디 마산, 시안 브렉킨, 폴 포플웰
정보
드라마 | 영국 | 91 분 | 2012-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