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달팽이의 별 - 세상에 이런 연인 또 없습니다

효준선생 2012. 3. 23. 00:06

 

 

 

 

 

빗물이 아파트 베란다의 봉을 스치듯 지난다. 굴곡을 따라 맺은 물방울을 매만지는 남자, 서정적이지만 그는 볼 수 없다. 비가내리며 내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저 제 몸 근처에서 빗방울이 만들어낸 물방울을 조심스레 만져가며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다. 비구나.

보는 사람은 낯설지 모르지만 그에겐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상하다 생각해 본 바 없는 행위였다. 영찬씨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수용한다. 녹음기처럼 생긴 점자책으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지인들과 손가락 위를 톡톡 치는 촉각으로 사람들의 온정을 감지한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영화 달팽이의 별은 처음엔 안볼 생각이었다. 낯선 다큐멘터리와 슬픔이 가득할 것 같은 두 주인공 부부,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사에 익숙해져버린 관성 탓이다. 우연히 김창완님의 목소리가 덧입혀진 예고영상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해졌다. 이 영화 꼭 봐야겠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홍보는 그다지 필요없었다. 보여지는 것 그대로 가슴에 전달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호소력은 영찬씨와 순호씨가 좀처럼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의지때문이 아니었을까


영찬씨는 여의치 않은 조건임에도 줄기차게 뭔가를 쓰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그 구절을 말로 세상에 토로해냈다. 다소 어눌한 말솜씨지만 지구인이 되고픈 우주인의 바람 같은 것이었다. 영화속에서도 나레이션으로 여러편의 싯구가 등장한다. 분명 그의 머리에서, 아니 가슴에서 나온 것이리라.


순호씨는 어린 시절 척추를 다치는 바람에 키가 제대로 크지 못했다. 영찬씨의 절반 정도되는 키지만 그녀가 없으면 영찬씨는 결코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라서가 아니다. 마치 원래 한 몸이었던 생명체가 둘로 나뉘었으니 그래서 늘 같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어울렸다. 세상 선남선녀들은 다들 제 짝을 찾는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 되고 식구가 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싸우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들 부부도 분명 그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영화속에서 보이는 부부에겐 그 시간마저도 사치처럼 여겨졌다.


안방 형광등이 나갔다. 아내는 키가 작아서 손이 닿지 않고 키가 큰 남편은 앞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형광등을 빼내거나 설치하지 못한다. 형광등을 빼내서 규격을 적고 사오고 다시 끼워넣고 과정이 힘도 들어 보였다. 위치를 설명하려면 일일이 남편의 손가락위에 말하고자 하는 그들의 글자를 두드려 넣어야 했다. 지난한 과정이 끝나고 드디어 어렵사리 형광등 교체작업이 끝났다. 둘은 얼싸안았다. “귀찮으니까 집안일은 당신이 알아서 좀 해”라며 등을 돌리기 일쑤였던 일들도 이들에게는 소중한 과정이자 결과였다. 생각해 보면 형광등은 아내에게만 유의미한 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영찬씨는 자신에겐 불필요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에겐 결코 없어서는 안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늘 붙어 다니던 그들이 점자 도서관에 혼자 가보겠다며 집을 나선 영찬씨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순호씨의 눈빛,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을 혼자 걱정으로 보내고 다시 마중을 나간 그녀, 이런 말을 한다. 떨어져 있어보니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눈 코 입을 다 갖추었다고 완벽하지는 않다. 매사 삐뚤어진 마음, 남에게 해를 주고도 아무런 뉘우침도 없는 마음, 뺏고 빼앗으려는 마음들로 사람들은 그걸 욕망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며 산다. 그런데 영찬씨와 순호씨에게 이런 마음이 필요할까? 잠시라도 그런 마음 씀씀이를 보지 않아 므흣했다. 우주에 달팽이의 별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찬씨 손가락을 간질이듯 두드리는 순호씨의 손가락에서 세상 만물의 이치가 전달된다니 놀라운 체험이다. 어쩌면 달팽이 별에선 그게 소통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다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라고 믿고 산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니다라는 믿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부족할 것이야 불편할 것이야 라며 편견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에 대한 斜角의 눈빛을 조금만 거두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그보다 곁에 있는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는 게 더 큰 수확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그런 류의 영화다.  

 

 

 

 

 

 

 


달팽이의 별 (2012)

Planet of Snail 
9.5
감독
이승준
출연
조영찬, 김순호
정보
로맨스/멜로, 다큐멘터리 | 한국 | 85 분 | 201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