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해로 - 누군가의 반쪽으로 살다 간다는 것

효준선생 2012. 3. 22. 01:29

 

 

 

 

 

결혼식장에서 주례선생의 여러 가지 덕담중에 가장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아마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라는 말일 것이다. 영화 해로는 그 백년해로에서 나온 말이다. 偕老라는 단어를 골라내 보니 함께 늙다라는 의미가 있다. 인체의 자연수명상 백년은 불가능하지만 해로는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함께 늙을 수는 있지만 함께 죽을 수는 없다. 사랑해서 함께 하고 싶고 그래서 결혼해 살아왔지만 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가정은 나를 위해서도 그 사람을 위해서도 슬프기만 하다. 사람이 죽는 걸 막을 도리는 없지만 늘 곁에 있던 사람이라는 생각에 허전함에 헛헛한 기분 가시질 않는다.


영화 해로는 두 노부부의 인생 마지막 페이지를 담고 있다. 장성한 자식은 외국에 이민을 가서 살고 이 부부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아담한 집에서 둘이 살고 있다. 소일거리도 별로 없어 보인다. 배를 타고 인근 섬에 다녀오거나 집단장을 하거나 둘이 자전거를 타는 일이다. 외견상 무척 다정해보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병마는 이들에겐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장애다. 거부하려고 애를 쓰기 보다 그저 순순히 운명에 맡기려는 모습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기만 하다.


영화 시작부터 불안한 조짐은 있었다. 제목과는 달리 누군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설정일 것 같은 복선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떠나는 배를 따라가다 쏟아진 귤들하며, 심장에 탈이 생겼으니 주의하라는 의사의 소견하며, 속이 더부룩하니 식사를 거른다는 아내의 말까지. 그게 누구에게서 시작될지 몰랐지만, 영화는 한참 지나서 반대에 있는 사람에게 폭발시켰다. 아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철부지 남편, 듬직하다 못해 겉으로만 봐도 어딘가 아파보이는 남편이 다른 세상으로 갈 준비를 하는 아내를 위해 큼지막한 손을 놀려 집안 정돈을 하는 모습이 왜그렇게 안쓰러운 건지.


영화는 올곧이 부부 두 사람들에게만 포커스를 맞춰놓았다. 꽃집 주인, 그리고 병원 관계자를 빼면 그 흔한 일가친척이나 말썽꾸러기 자식도 하나 등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2시간이 넘게 이들은 열과 성을 다해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사라지만 이들 부부에게 이승에서 다 채우지 못한 미련은 없었을까?

아들이 하나 있다. 외국에 살기에 쉽게 들어올 수 없다는 설정이다. 부부는 서로의 임종을 챙기기 위해 서두르지만 타인에겐 그 부담을 지우기 싫었던 모양이다. 자식에게 장문의 편지를 남기는 모습이 담담해보였다. 그걸 읽는 자식의 모습은 어떨까?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죽을 땐 그게 가능할까?  엔딩즈음에 이르러서는 윤리적으로 그래도 될까 하는 장면도 등장하지만 이들 부부앞에선 오히려 숙연해질 뿐이었다. 세상의 모든 번뇌를 물리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곱게 죽을 수 있는 권리, 好喪이라고 부른다면 과언일까 웰빙 못지 않게 웰다잉도 관심을 받는 시대다.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욕심보다 마음의 평정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해로 (2012)

Hand in Hand 
8.8
감독
최종태
출연
주현, 예수정, 채민희, 김봉근, 이남윤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3 분 | 201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