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킹메이커 - 아수라장에서 악착같이 살아남는 법

효준선생 2012. 3. 22. 01:34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2012년 한국에서뿐 아니라 주요 국가의 수반들이 거의 교체되는 시점이다. 자의에 의해서든, 선거라는 타의에 의해서든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왠지 처량하다. 재임기간 선정을 베풀었다면 다들 그의 퇴임을 안타깝게 생각할텐데 이건 아직도 1년이나 남은 사람 앞에서 뒤뚱거리는 오리에 비유하고 있으니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잘해야 함이 답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정치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등극하기만을 위해 애를 쓰고 있으니 보고 있는 유권자들은 혀를 찰 밖에.


영화 킹메이커는 그런 점에서 2012년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를 선정하기 위한 지방 경선을 배경으로 두 진영간의 물고 물리는 힘과 지략과 배신의 대결이 아주 쫀쫀하게 꾸며져 있다. 물량공세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쭈 이것봐라, 긴장감이 최고조인데,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 안만드나?” 할 정도로 깊숙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모리스와 풀맨은 다음 대선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가장 유력한 후보자 중 두 명이었다. 이미 몇 곳에서 경선을 치루고 도착한 오하이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자가 아니어도 투표를 행사할 수 있기에 그만큼 이중으로 신경을 써야하는 곳이다.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모리스의 공보담당 비서관인 스티븐은 뜨고 있는 책략가다. 그가 펼쳐 보이는 한 수는 그야말로 신묘했다. 그의 수를 끝까지 놓지 않고 들여다보는 게 이 영화의 제대로 된 독법이다.


중국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에서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고 한나라가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무력이 아니었다. 장량이라는 걸출한 책사의 도움과 그를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유방의 선택이었다. 영화 킹메이커는 초한지의 일부분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아니 동양의 장기 한판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전략적 선택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미인계까지 덧붙여 놓으니,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모리스 의원으로 나온 조지 클루니는 분명 초한지를 읽은 게 아닐까 싶었다. 사실 패국이 된 초나라에는 장량에 못지 않은 범증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무력만을 믿은 항우는 범증을 노망난 노인네 취급을 했고 범증은 다음 세대는 장량, 아니 유씨 집안의 차지가 될 것임으로 예언했다.


킹메이커는 말 그대로 왕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 선거사무실은 매우 혼잡스럽다. 상대방을 꺾기 위해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전략이 튀어 나오고 후속조치를 강구하기 위해 갖은 머리를 다 쓰는 곳이다. 비서관들이 자신들은 선거와 결혼을 했다는 말을 할 정도니, 그런 부하를 둔 모리스 의원도 일 할 맛이 날 법하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다. 아무리 질 것 같은 게임으로 보여도 한 방에 훅하고 가는 곳이 그 바닥의 생리다. 외부에서는 짐작 못할 흑색선전과 모종의 거래가 벌어지고 심지어 자기편까지도 의심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최근 한국 정치판에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각종 호재와 악재속에서 환호작약하거나 절통상심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체 무엇이 저들을 정치판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걸까 싶다.


정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엔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 십 년간 선거판에서 선거 전략을 짜며 호구지책으로 삼던 사무장이 하는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그 말도 공수표가 된다. 제 아무리 의리를 외쳐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권력 지향엔 정도가 없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는 녹록하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영화 드라이브의 냉철한 운전수로 나왔던 라이언 고슬링이 맡은 스티븐이 선거판에서 구르며 선배를 제치고 처세의 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아주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다. 적당하게 느물거리며 적당하게 폼도 잡을 줄 아는 그런 능력있는 참모하나 데리고 있으며 누구라도 봉황의 꿈을 꾸어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여러 장면이 인상적이지만 특히 투샷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유난히 강조점을 둔다. 여자인턴과 스티븐의 작업거는 장면, 상대편 선거참모와 스티븐의 말싸움, 그리고 이 영화 최고의 반전인 모리스와 스티븐의 결정적 거래장면등이다. 승자는 잘 싸우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 자다. 영화 엔딩에서 라이언 고슬링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된다. 비록 지금은 수완좋은 킹메이커지만 킹의 머리 위에 있는 자는 바로 메이커다. 처세는 그런 법이다.  

 

 

 

 

 

 

 


킹메이커 (2012)

The Ides of March 
9.5
감독
조지 클루니
출연
라이언 고슬링, 조지 클루니,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폴 지아매티, 마리사 토메이
정보
드라마 | 미국 | 101 분 | 201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