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가비 - 경계인, 애정과 매국사이에서 서성거리다

효준선생 2012. 3. 20. 01:33

 

 

 

 

그리 오래 전도 아니다. 100여년전 한반도를 뒤덮고 있던 먹구름은 다름아닌 외세의 야욕과 간섭이었다. 조선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면 철도 부설권, 광산채굴권등 경제적 이권을 탐하더니만 이윽고 외교권, 사법권을 빼앗아가더니만 이젠 허수아비나 다름없어 보이던 이름만 왕의 목숨마저 노리는 형국이었다. 전제주의 시절 왕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그런 존재가 외세의 힘을 빌어 다른 외세를 견제하겠다고 나선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 없었으나 하루를 더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야말로 하루 목숨이었다.


기미상궁은 왕의 수랏상에 올라온 음식을 일부 떠서 먼저 먹는 궁인을 말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옛날 왕궁에선 독살이라는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하려는 기도가 많았기 때문이다. 왕 뿐이 아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사체로 발견된 많은 예는 바로 이 먹는 것 때문이었다. 심지어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극소량을 투입해 오랜 시간을 끌어 중독이 되어 죽게 했다는 일화도 남은 것을 보며 왕위라는 게 늘 큰소리 뻥뻥 치고 아랫 것들을 부리는 마음 편한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화 가비의 원작 소설의 제목은 노서아 가비다. 한자어 조어로 그 뜻은 러시아 커피다. 커피가 러시아에서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시 조선을 둘러싼 열강중에서 청 일 러중에서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영화의 주인공 격인 따냐는 비운의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극중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그녀가 비록 “근본도 모르는 여자”이긴 하지만 그 “근본”을 왕이 직접 알아봐 주는 장면에서부터 왕과 따냐의 애매한 관계가 본격 시작된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남자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도 바친다고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위의 조건에 다소 상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워낙 세상이 하수상하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포커스는 통역이다. 러시아 베베르 공사의 책임 통역관이 왕의 말을 제대로 통역하지 못하자 따냐에게 맞냐고 묻는 장면이나, 따냐가 바로 당시엔 중인계급에 속했던 통역관의 여식이라는 설정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열강의 침탈이 노골화 되지만 사신으로 온 자들의 통역을 자의적으로 함으로써 손해를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명나라엔 사대를 다른 나라엔 국수주의를 표방했던 은둔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말을 하며 밥벌어 먹고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와중에 따냐처럼 서양문화로 대변되는, 커피도 잘타고, 얼굴도 곱상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한 그녀에게 왕이 호감을 갖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영화가 회고에서 출발 열차 액션을 지나 아관파천을 한 시점이라는 가정하에 러시아 공사관을 주요 배경을 하는 탓에 다소 답답한 느낌을 주지만 그 보다는 일본의 계략, 러시아의 傍觀, 고종의 고군분투와 따냐와 일리치의 샌드위치 신세가 나열은 되지만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아무래도 장소 제공의 책임이 있는 러시아쪽 배우들의 공력이 약하고 일본쪽 캐릭터도 단순하게 두 명에만 의존하다 보니 발생한 일로 보였다.


그런 이유로 구한말 러시아 공사관, 당시의 왕궁으로 사용한 덕수궁등을 오가며 갖가지 계략과 술책이 펼쳐지는 모습을 짧으면서도 강렬하게 심어 놓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러나 의상등 고증을 감안한 복식등은 눈요기 거리로서는 좋았다. 커피가 매우 자주 등장했지만 고종 독살 사건과 확실하게 연계가 되어 있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옳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 걸 보면 참, 운명은 정말 정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주요 인물들의 원래 국적은 죄다 한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친일파, 친러파등으로 산다는 것에 결코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요즘에도 그 친0파는 여전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저런 이유를 대가며 국부를 팔아먹으려고 하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니 진정 강대국 사이에 끼어 사는 나라의 애환이란 말인가

 

 

 

 

 

 

 


가비 (2012)

Gabi 
7.6
감독
장윤현
출연
주진모, 김소연, 박희순, 유선, 조덕현
정보
미스터리, 드라마 | 한국 | 115 분 | 2012-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