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밀월도 가는 길 - 내 친구가 내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효준선생 2012. 3. 12. 00:58

 

 

 

 

영화 밀월도 가는 길을 보며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학창시절을 보내며 그냥 같은 반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따돌림과 물리적 가해를 당하는 애들을 본 기억이 났다. 유난히 추레한 차림새와 가져오지 못하는 점심 도시락과 시간이 되면 우두커니 운동장에 앉아 점심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던 아이. 사정을 아는 애들은 고아원에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냥 이라도 놔두면 좋으련만 짓궂은 장난을 쳐가며 그 애를 괴롭혔다. 그런데 이듬해 다른 반이 된 그 애는 완전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무슨 수완을 부렸는지 몇몇 똘마니들을 데리고 보스를 자처하며 더 없어 보이고 더 약해보이는 애들 앞에서 위세를 떨었다.


몇 명의 정학과 근신이 이어졌고 졸업을 하면서 소식이 끊겼지만 그 아이의 행세는 마치 성장소설의 주인공처럼 남아있었다. 영화 밀월도 가는 길은 분명 학원 폭력과 가진 애와 그렇지 못한 애 사이에서의 물리적 충돌, 그리고 소위 깜보라고 부르는 동류의식에 한발씩 닿고 있었다. 주제의식은 분명 작년 개봉한 화제작 파수꾼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선 훨씬 자극적이었다.


학교 이사장의 조카라는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완장에 딱 한 녀석만 갈구는 종혁앞에 기정은 말 그대로 먹이감이나 다름 없었다. 기정이 그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은 웜홀이라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탈출구뿐이었다. 그 비현실적 비상구앞에서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동조를 데려오지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력의 굴레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뿐, 시간이 지났다. 동조가 기정에 대한 기억을 추려내 쓴 소설로 주목받으며 과거여행을 떠나지만 기정은 더 이상 그 옛날의 모습인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냥 추정만 할 뿐이다.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변신했는지도.


기정의 캐릭터는 단연 압도적이다. 그가 피해자로 나와 무수하게 쏟아지는 폭력으로 몸뚱아리 하나로 받아내서가 아니다. 그는 열세에 놓여있었다. 조실부모에 할머니와 살고 있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연명을 청할 곳은 없어 보였다. 그가 왜 웜홀에 대해 집착하는 지는 알 것 같았다. 현실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밀월도는 몰래 넘어가는 섬이란 뜻인다. 세상엔 없는 곳이다. 영화속에서 기정이 종혁에게 “놈”이 아니라 “년”이라고 불리는 부분은 기정이 동조에게 손을 내밀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자 방법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동조가 기정의 그런 모습에 “異性”적으로 끌린 것으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性까지도 변조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을 지키려고 한 마지막 삶의 마지노선은 아니었을까


영화에선 동조는 적극적 방조자, 또 한 명의 친구 재호는 소극적 방조자였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누군가는 연명을 위해 살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연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길 없는 마지막 한 명. 한때 그들은 모두 친구였을텐데.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갈라 놓았을까. 크고 나면 다 똑같이 먹고 살기 위해 하루를 뛰어 다니며 사는 소시민이 될텐데. 글쎄 학교 재단 이사장 조카 정도라면 좀 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낯선 배우들이지만 이름값에 매달리지 않고 화끈한 연기를 보여준 여러 배우들이 눈에 띈다. 특히 어린 동조역의 김창환과 기정역의 신재승은 지켜봐야 할 재목이다.

 

 

 

 

 

 

 

 

 


밀월도 가는 길 (2012)

Mirage 
9
감독
양정호
출연
신재승, 김창환, 문정웅, 김태윤, 장문규
정보
드라마 | 한국 | 84 분 | 2012-03-08